[사설]메르스로 인한 의료난민 사태는 어떻게 할 건가

  • 동아일보

내일이면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된다. 추가로 판명된 확진 환자는 다소 줄어드는 추세지만 국민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삼성서울병원에 이어 건양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등이 한시적으로 응급실을 닫거나 진료를 중단하면서 의료 공백 문제가 현실로 닥쳤다. 18일 현재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경유한 의료기관은 전국 10개 시도 84곳이나 된다. 메르스 사태 장기화에 의료 현장의 혼란이 겹치면서 진료 사각지대가 커지는 ‘의료 대란(大亂)’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당장 삼성서울병원의 부분 폐쇄 조치로 이곳 외래 환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전국적으로 전체 암 수술 중 10%를 맡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수술을 중단함에 따라 중증 환자들은 메르스 환자 못지않은 패닉 상태다. 기존 환자들이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의료 난민(難民)’도 생겨났다. 추가 감염을 우려한 일부 병원들의 진료 거부가 속출한 탓이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진료를 거부하면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에 따라 처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지만 현장에서 받아들여질지 불분명하다. 결국 어제 당국은 의사의 전화 진찰 후 약국으로 직접 처방전을 발송하는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그러자 이번엔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과 의사 단체들이 재벌 병원에 대한 특혜라며 반대 성명을 냈으니 답답한 일이다.

일반 환자들의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가 161곳의 국민안심병원을 지정했다지만 어린아이들을 둔 엄마들은 병원 가기가 두려워 정기 예방접종마저 미루고 있다. 동네 병원에서 단순 발열 환자들의 진료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병원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메르스에 걸려도 걱정, 안 걸려도 걱정이라는 한탄이 나오는 형편이다.

의료진 중 확진환자와 격리 대상자가 늘어나면서 대체 인력 부족도 심각해지고 있다. 메르스와 직접 싸우는 의료진의 피로감은 갈수록 누적되고, 나머지 인력은 그들대로 업무가 과중해져 자칫 의료사고가 발생할까 걱정스럽다. 어제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시민단체 행사에서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숨이 턱턱 막히는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환자를 돌보는 일은 너무 벅차다”며 인력 충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보건당국에서 이런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경영컨설팅사 맥킨지앤드컴퍼니가 한국 정부에 전한 첫 번째 제언이 ‘다른 환자들의 존재를 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반 중증 환자들이 메르스 사태의 뒷전으로 떠밀려 위험에 빠지는 2차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다. 메르스 사태를 진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지만 이로 인해 의료 난민과 의료 공백이 생겨나는 것도 재앙이다. 필요하다면 세계보건기구(WHO)의 도움이라도 요청해 또 다른 재앙을 막아야 한다.
#메르스#의료난민#의료 공백#의료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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