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엄마를 바보로 아는 정치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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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4만3000 대 140만. 숫자만 놓고 보면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4만3000은 전국 어린이집 원장들, 140만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숫자다. 3일 국회에서 부결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이런 일방적 수적 구조가 철저하게 무시된 결과였다. 이 정도면 스파르타군 300명과 페르시아군 100만 명의 전투를 다룬 영화 ‘300’에 버금갈 정도다.

처음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자고 했을 때도 반대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많은 국회의원이 반대 또는 기권으로 개정안 통과를 막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각 당의 지도부와 중진의원, 심지어 법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까지 반대와 기권 행렬에 가세했다.

사실 국회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번 개정안 부결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그래도 엄마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두 달 전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보육교사의 ‘핵 펀치’ 사건 때 경쟁하듯 분노를 터뜨리던 국회의원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가 나다 못해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CCTV 설치는 근본 대책이 아니다” “교사들의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 “교사 충원이나 예방 교육이 더 중요하다” 국회의원들이 내세운 갖가지 반대 이유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엄마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한마디로 “누굴 바보로 아느냐”는 것이다. 엄마들도 잘 안다. 어린이집 곳곳에 CCTV를 설치해도 아동 학대가 완전히 사라질 수 없고, 보육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시급하며, 정부기관의 관리감독도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CCTV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보육교사에게 맞을 수도 있고 다른 아이와 싸우다 다칠 수도 있다. 넘어져 책상 모서리에 부딪칠 수도 있고 밥을 먹다 토할 수도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곳이 어린이집이다.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CCTV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집과 보육교사에게 대놓고 CCTV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는 엄마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내 아이 맡겨 놓았다는 이유로 눈치만 보며 냉가슴만 앓는 엄마들이 많다. 이렇게 엄마들이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정부와 국회가 대신 해달라는 바람이 이번에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이쯤 되면 정치인들의 셈법은 명확하다. 선거를 불과 1년여 앞둔 현재 눈앞에 똘똘 뭉친 4만3000명이 아무 소리 못하는 140만 명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여야는 4월 임시국회 때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재논의한다고 한다. 그들이 140만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끔 엄마들이 나서야 할 때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어린이집#영유아보육법 개정안#CCTV 설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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