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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세계는 줄기세포 전쟁중… 미국에만도 연구팀이 1000개 이상”

입력 2015-01-26 03:00업데이트 2015-01-2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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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 ‘인간 체세포 복제배아줄기세포’ 세계 첫 성공 미탈리포프 교수
최근 방한한 줄기세포 스타 과학자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 소탈한 옷차림과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카자흐스탄 태생인 그는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은 한국과 줄기세포 연구 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허문명 기자
《2013년 5월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해 세계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가 한국에 왔다(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는 2003년 황우석 박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발표했지만 연구 진실성 논란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미탈리포프 박사는 건강한 여성들로부터 채취한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유전적 질환을 가진 아이 1명과 태아들에게서 채취한 피부세포를 주입해 모두 6개의 복제배아를 만들어냈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2013년 과학전문지 ‘셀(Cell)’에 발표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라섰다. 과학 잡지 네이처가 ‘2013년을 빛낸 과학계 인물 10명’ 안에 그를 꼽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보려 했던 것은 세계 줄기세포 연구의 최신 동향이 궁금해서였다. 그를 단독으로 만난 것은 3박4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였다. 후줄근한 청바지와 낡은 스웨터, 시종일관 유쾌하고 겸손한 태도는 ‘세계적인 과학자’는 근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날려버렸다.》한국과 협업하고 싶어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세 번째이다. 지난 방한 때에는 내 연구팀에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의 모교(경상대)를 방문해 강연을 하고 연구동향을 살펴봤다.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인 협업방안을 타진하기 위해 왔다.”

“어떤 식의 협업을 말하는 것인가”했더니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한국인에 대한 평가로 대신했다.

“매번 한국에 오면 한국인들의 열정과 집중력에 놀라고 돌아간다. 이래서 한국이 선두 주자가 되었구나 확인하게 된다. 한국인에 대한 평가는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나는 20여 년 전 미국 유타대에 처음 갔을 때부터 17년 전인 지금 오리건대로 옮겨와서도 한국인들과 계속 일했다. 연구진은 총 15명인데 지금은 2명이지만 많을 땐 4명도 있었다. 정말 부지런하고 똑똑하며 도전정신과 창의성이 뛰어나다.”

―어떻게 복제 연구에 뛰어들었나.

“본래 내 관심은 복제가 아니라 유전병 치료이다. 1998년 오리건대연구센터에 오자마자 원숭이 배아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마침내 2007년 원숭이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인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

“유전적 질환의 대부분은 모계로부터 유전된다. 그래서 난자 연구에 주목했다. 난자 내 어떤 물질이 유전적 질환을 일으키는지 알고 싶어 건강한 난자의 핵을 질환이 있는 난자에 이식해 다시 건강한 난자로 만들어내는 연구까지 도달했다.”

통역이 있긴 했지만 그는 매우 쉬운 단어로 영어를 구사해 알아듣기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때로 발음이 명확하지 않았다. 외모에서 드러나지만 미국 태생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출신이다. 변방의 국가에서 세계 중심부로 와서 스타 과학자가 되기까지 걸어온 여정이 궁금했다.

“소련연방 시절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연방군에 입대해 2년간 복무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모스크바에 있는 농업기술아카데미에서 학사 석사과정을 마치고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유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연구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1994년 미국 유타대에서 박사후(포스트닥터) 과정을 밟을 기회가 있었는데 자유로운 풍토가 너무 맘에 들었다. 당시에도 미국은 생명과학분야의 선두 국가였고 세계적인 과학저널에 발표되는 논문의 70%도 미국 연구자들이 낸 것들이었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미국 가서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어 미국행을 택했다. 3년 동안 유타대에 있으면서 영주권을 얻었고 5년 뒤 시민권을 얻었다.”

美정부 지원 해마다 늘어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영어가 제일 어려웠다(웃음). 하지만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는 그 어떤 어려움도 잊게 해주었다. 러시아에서는 지도교수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만 하고 제자는 무조건 따라야 해서 자기 연구를 못 했다. 연구 주제도 교수가 정해줄 정도였다.”

그가 일하고 있는 오리건보건과학대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한 미국 내 최고 연구기관으로 명성이 높다. 미탈리포프 박사는 “나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톰슨 박사(복제가 아닌 체외 수정란을 통한 배아줄기세포의 창시자)가 잠시 적을 두었던 곳이고 일찍이 ‘영장류센터’를 두어 원숭이 연구에서도 세계 최고 실적을 쌓아온 곳”이라고 소개했다.

―현재 미국 내 줄기세포 연구동향은 어떤가.

“오우! 매우 관심이 높다. 미래 성장동력산업으로서의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 지원도 매년 늘고 있다.”

그는 노벨상 사관학교라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를 비롯해 전 세계 100여 개에 달하는 유명 연구센터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 전역의 최고 수준의 10여 개 연구센터와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연구비는 얼마나 쓰나.

“내 연구팀만 매년 300만 달러(약 30억 원)를 쓴다. 미 국립보건원을 포함해 연구비 60%가량을 정부에서 받고 나머지는 연구기금으로 충당한다.”

나 같은 과학자? 적어도 300명

이 대목에서 “줄기세포 분야에서 당신 같은 스타 과학자가 몇 명이나 되나”고 묻자 그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사래를 치더니 “나는 스타가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이 못 잡아도 한 300명가량이 있다”고 했다. 기자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연구팀도 한 1000여 개 정도 된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사실 이건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전 세계가 경쟁 중이다. 연구자 입장에선 한편으로 식은땀이 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협업을 통해 인류의 난치병 치료를 위해 기여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연구 목적도 불치병 치료이다. 어린이를 포함한 난치 불치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에게 치료 기술이 열린다면,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보람이다.”

―현재 가장 무서운 나라는 어디인가?

“(어깨를 움찔하며) 역시 말하기 어렵다. 모든 나라가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이 무서운 돈과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캐치 업(catch up) 속도가 눈부시게 빠르다. 해외에 나가 있던 많은 과학자들도 고국으로 돌아오고 있고 중국 정부도 과학자들을 선진국에 보내 훈련시키고 있다. 중국은 2010년부터 줄기세포 연구를 ‘국가중대과학연구계획’으로 정해 치료 목적의 배아복제 연구를 전면 허용하는 등 규제도 빠른 속도로 풀고 있다. 일본 역시 잘하고 있다. 다양한 임상연구도 하고 있다. 비록 (유도만능줄기세포라는) 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다양성이 좀 부족한 점이 있지만 말이다.”

일 없어 귀국 못한다는 제자들

―한국은 어떤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내 실험실에 똑똑한 한국 과학자들이 너무 많은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할 일이 없어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싶다. 그들에게 축적된 연구 성과가 상당한데 한국 정부는 제대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바깥에서 보기에도 전자나 자동차 같은 분야는 엄청 발달했는데 생명과학 쪽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미래 성장동력은 이 분야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도 규제를 몇 년 전부터 획기적으로 풀고 있다. 연방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고 난자도 매매가 가능해 연구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다. 내가 한국에 와서 강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런 세계적인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한국의 잠재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도움 받을 분야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줄기세포연구는 개발에서부터 이것을 치료에 적용해 상용화하는 과정까지 일관화되어야 하는데 연구부터 막아놓으면 애초에 이 분야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분위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미국은 연구 규제가 있나.

“정부 차원의 연구 승인 절차 자체는 없다. 다만 연구자가 소속된 기관(대학이나 연구소) 내 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 심의를 받아야 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난자를 사용하는 것이라 거의 전 세계가 생명 윤리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를 통해 무분별한 난자 사용을 막고 있다. 미국도 오리건 캘리포니아 뉴욕 주 등 3개 주를 제외하고는 난자 매매를 금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이 3개 주에 집중되어 있다. 선진국에서는 영국이 정부에서 연구승인을 해주는 ‘배아보호법’ 제도가 있는데 자격과 요건을 갖추면 가급적 승인을 받는다. 난자의 경우 자유로운 매매는 금지하고 시험관 수정을 하고 난 여분의 난자를 사용하는 ‘에그 셰어링(egg sharing·난자공유제도)’을 실시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약간 민감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2013년 5월 세계 최초 배아줄기세포 성공 이후 바로 사진조작문제가 나왔었다.

“처음 논문을 실었던 셀 지에서 검증해 조작이 아니라 ‘실수’라고 결론 내렸다. 사진에 번호를 잘못 매겨(그는 mislabelling이라고 했다) 벌어진 일이었다. 과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재현성’의 문제도 해결했다. 내 논문을 토대로 두 연구진이 똑같은 결과를 낸 것이다. 미국 내에서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국내 연구 10년간 스톱… 승인 한 곳도 못받아 ▼

한때 줄기세포 강자였던 한국은 지난 10년간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혀 연구가 멈춰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몇몇 연구팀이 승인 요청을 했으나 현재 국내에서 연구승인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차의과대학과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이 2009년 정부승인을 받았지만 줄기세포를 수립하지 못하고 재승인 신청을 하지 않았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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