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답답하고 영혼이 외로운 시대다. 옛사람들도 그랬나 보다. 상우천고(尙友千古)라는 말이 있다. 맹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이 말은 자신의 시대에 마음에 맞는 벗을 구하지 못하여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과 벗이 되어 토론을 하는 것이다.
한 200년 전쯤 인왕산 자락에 국가의 서적 편찬을 맡은 교서관(校書館)의 하급 관리를 하던 장혼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부유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늘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을 행복으로 알았다.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눈과 귀에도 즐겁고 마음과 뜻에도 기뻐서, 빠져들수록 더욱 맛이 있어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책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혼자 호젓한 때 적막한 물가에 있다 하더라도 문을 닫고 책을 펼치고 있노라면, 완연히 수백 수천의 성현이나 시인, 열사와 더불어 한 침상 사이에서 서로 절을 하거나 질타하는 것과 같으니, 그 즐거움이 과연 어떠하겠는가?”라 하였다. 책 속에서 옛사람을 만나 이렇게 놀았다. 이것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 박지원도 선비의 임무를 논하면서 글을 읽는 즐거움을 이렇게 말하였다.
“쇠고기 돼지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많이 먹으면 해가 생긴다. 많을수록 유익하고 오래갈수록 폐단이 없는 것은 오직 독서일 것이다.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경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또 박지원과 절친했던 이덕무는 독서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갑절이나 낭랑하여 그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둘째, 차츰 날씨가 추워질 때에 읽게 되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흘러가 몸이 편하여 추위도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에 눈은 글자에, 마음은 이치에 집중시켜 읽으면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에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부딪침이 없게 되어 기침 소리가 갑자기 그친다. 주림과 추위, 근심과 병을 이겨내게 하며, 노망까지 막아준다니 독서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박지원은 “나는 집이 가난한 이가 글 읽기 좋아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부자로 잘살면서 글 읽기 좋아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책의 적(敵)이 부유함이었나 보다. 그러나 지금 책의 적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독서의 측면에서 젊은이들을 문맹의 시대로 돌려놓았다고 할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책의 적으로 규정하고 물리쳐야 한다고 소리를 높여야 할 것인가?
장혼은 “백 근이나 되는 묵직한 물건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다섯 수레의 책은 돌돌 말면 가슴 속 심장 안에 넣어 간직해둘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장혼이 책을 읽어 가슴속에 오거서(五車書)를 담을 수 있다고 했으니,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곧 사나이라면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으니 사람으로서 행세하려면 다섯 수레의 책을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가슴에 다섯 수레나 되는 책을 담기는 어려우니 우선 스마트폰에 담을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스마트폰은 내 손안의 도서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손안의 오거서는 불편한 도서관이다. 내 손안의 도서관에 책을 좀 더 쉽게 담고 즐겁게 꺼내어 읽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대기업이 이제 이러한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와 함께 짧은 시간 작은 화면으로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알찬 읽을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하여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아이들이 책을 읽는 소리일 것이다. 조선 중기의 시인 이달은 “앞마을 뒷마을에 비가 막 그치니, 집 아래 외밭은 손수 호미질 하네. 깊은 골목 해가 긴데 할 일 없어서, 그늘 아래 평상 옮겨 아이놈 책을 읽힌다(村南村北雨晴初, 舍下瓜田手自鋤. 深巷日長無箇事, 樹陰移榻課兒書)”고 하였다.
초여름을 맞아 비가 그치자 외밭에서 김을 매고 평상에 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내 손안의 도서관에서 읽을거리를 찾아 아이에게 읽히노라면, 외로움과 답답함이 잠시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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