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41>파르르 연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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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르 연두
―조현석(1963∼)

살포시 실바람이 타는 천 갈래 구름의 현악(絃樂)
봄볕 좋은 물가에 앉아 귀에 고이는 소리 담는 게지
소리는 발가락 적시고 무릎으로 허벅지로
굽은 등 짚고 척추 따라 정수리 거쳐 지그시
감은 눈동자 속으로 차가운 심장 한가운데
맴돌고 맴돌아 다시 목뼈 타고 백회혈 뚫고
더욱더 위로 오르고 올라서 동토(凍土)가 품
었던 햇살의 추억에 닿지 그 하늘 끝에 되돌
려놓는 게지 자잘하고 소소한 파문 무궁무진의 허공 뒤덮는 게지
파르르 파르르
흐르고 오래 흘러서 오래도록 길게
갓 피운 연두의 여운, 결코 멈추지 않는게지


‘파르르’는 얇고 가벼운 것이 재게 떨리는 모양이며 소리이다. ‘파르르 연두’ 생명의 상징인 녹색, 그중에서 가장 여리고 어린 신생(新生)의 연둣빛이 파르르, ‘실바람이 타는 천 갈래 구름의 현악(絃樂)’으로, 햇살 올올이 시인의 몸에 마음에 전해진다. 파르르, 시인은 한 그루 나무처럼 연두에 물들고 물오른다.

둘째 연의 주인공은 시인이며 나무이다. 파르르 ‘구름의 현악’이 와 닿는 소리에 땅 밑에서 나무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으리. 그 소리 ‘무릎으로 허벅지로 굽은 등 짚고 척추 따라 정수리 거쳐’ 오르다 ‘지그시 감은 눈동자 속으로 차가운 심장 한가운데 맴돌고’ 맴돈단다. 시인이나 나무나 심장이 차가워지도록 추운 겨울을 보낸 것이다. 아, 잘 견디고 무사히 봄이다! 그 겨울을 견딘 힘으로 ‘다시 더욱더 위로 오르고 올라서’ 나무는 초록으로 ‘무궁무진의 허공 뒤덮을’ 것이네! ‘파르르 연두’, 봄기운이 우주 만물에 퍼진다.

나무가 없으면 지구의 봄은 어떨까? 봄이 있기나 할까? 시인 조현석이 없으면 이리 싱그러운 ‘파르르 연두’의 봄도 세상에 없을 터. 마지막 연이 압권이다. ‘흐르고 오래 흘러서 오래도록 길게/갓 피운 연두의 여운, 결코 멈추지 않는 게지’. 아득히 길고 오랜 생명체의 표상인 나무가 ‘갓 피운 연두’, 햇것인 생명의 여운으로 ‘천 갈래 구름의 현악’과 맥놀이를 이룬다.

‘현악’의 영어 스트링(string)에서 스프링(spring)이 연상된다. 스프링은 ‘봄’이고, ‘샘’ ‘용수철’ ‘솟아나다’ ‘싹트다’라는 뜻도 된다. 겨우내 숨은 듯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해서 ‘봄’인 우리의 봄은 아른아른 은근한 맛이 있고, 스프링은 생동하는 맛이 있다. ‘파르르’는 그 사이에서 상큼하게, 탄력 있게 떨린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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