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 변동 신고 내용에서 전체 고위공직자 가운데 부모나 자식 등 직계 존비속 재산을 신고하지 않은 ‘고지(告知) 거부’ 비율이 29.7%에 이르렀다. 지난해 정부는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신고를 거부할 수 있는 ‘분리거주 기간’을 신고일 이전 6개월 이상에서 1년 이상으로 늘렸다. 이렇게 기준을 강화했는데도 고지 거부 비율은 지난해(29.4%)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공직자 10명 중 3명이 가족 전체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다면 이 제도의 근본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청와대는 수석비서관급 이상 공직자 14명 가운데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이정현 홍보수석,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박흥렬 경호실장 등 6명이 직계 존비속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국무총리와 장관 15명(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장관 제외) 가운데 정홍원 총리와 최문기 미래창조과학, 서남수 교육, 황교안 법무, 이동필 농림, 방하남 고용, 조윤선 여성부 장관 등 7명도 아들 부모 등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권력과 지위가 높은 공직자일수록 고지를 꺼리고 있다.
고위공직자는 재산 변동 내용을 신고할 때 본인뿐 아니라 부모 자식 등 직계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의 경우 개인정보의 침해를 막기 위해 사전 허가를 받아 고지를 거부할 수는 있다. 현실적으로 이 조항은 위장양도나 편법상속 등 공직자의 재산은닉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 공직자는 부모나 자식의 재산까지 등록하게 되면 공직자 직계 가족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고지 거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가족 전체의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한 공직자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구조다. 공직자들의 개인적 의사에 따라 공개와 거부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는 공평하지 않다. 고지 거부를 아예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이번 기회에 재산 변동 신고 내용 공개를 8년째 금요일에 하는 관행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변동과 관련된 뉴스가 주말에 나오도록 해 국민의 주목도를 떨어뜨리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