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병선]디캐프리오를 놓아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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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문화부 기자
민병선 문화부 기자
지장보살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옥황상제의 앞.

“너는 다음 생에는 어떻게 태어나고 싶으냐?”

“저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얼굴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왔던 그 시절의 얼굴로.”

깨고 나니 꿈이었다. 이처럼 남자들조차 그의 외모를 시샘하던 미남 배우 디캐프리오(40). 그는 1991년 영화 ‘크리터스3’로 데뷔해 세계 최고의 배우로 각광받았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년)과 ‘타이타닉’(1997년)은 그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그도 안 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이다.

3일(한국 시간)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캐프리오는 다섯 번째 물을 먹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이번까지 다섯 번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트로피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슈 매코너헤이의 차지였다.

시상식장에서 그는 수상 실패를 직감한 듯 어두운 표정이었다. 브래드 피트가 사회자가 장난스럽게 주문한 피자를 나르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할 때, 디캐프리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피자를 거절했다. 그의 바로 뒤에는 수상의 걸림돌이 앉아 있었다. 바로 ‘더 울프…’를 연출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72)이다.

디캐프리오는 스코세이지 감독의 페르소나(늘 함께하는 배우)다. 2002년 ‘갱스 오브 뉴욕’부터 이번 영화까지 5편을 함께했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 5편 가운데 홍콩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로 2007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디캐프리오에게 돌아오는 상은 없었다.

흔히 배우는 감독이 연주하는 악기라고 한다. 감독의 지도에 따라 배우의 연기는 천변만화한다. 그렇다면 수상 실패는 스코세이지 감독이 디캐프리오를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고희를 넘긴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제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내리막길이다. ‘더 울프…’도 자극적인 장면들로 가득하지만 메시지가 없다. 또 그의 영화들에는 연륜에 맞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나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다. 새로운 형식적 실험도 없다.

이는 논란과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1928∼1999)과 대비된다. 큐브릭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3년)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1971년) ‘샤이닝’(1980년) 등 만드는 영화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류의 역사와 기계문명에 대한 그의 영화들은 이후 조지 루커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에게 영감을 줬다.

괴팍한 성격의 큐브릭은 언제나 자신의 영화 세계를 부정하며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을 꾀했다. 반면 스코세이지는 1976년 주목을 받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 이후 자신의 고향 뉴욕이 배경인 영화만을 양산하고 있다. 자기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디캐프리오가 아카데미 훈장을 얻기 위해서는 스코세이지의 품을 벗어나야 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더 기대할 게 없다. “스코세이지 감독님, 디캐프리오를 사랑한다면 이제 그를 놓아주세요.”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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