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전망 잘 갖춰진 한국 패배해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
모두가 원하는 나라의 모습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고쳐야할 것 분명히 제시한 뒤 대대적인 수리에 나서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1999년 4월 20일 아침,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컬럼바인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두 명이 반자동소총과 권총으로 무려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살해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그랬을까.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컬럼바인’을 통해 그 이유를 추적한다. 폭력적인 게임이나 음악 때문에?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아니면 학교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웃나라 캐나다와의 비교는 압권이다. 인구 대비 총기 수가 미국과 별 차이가 없는 나라, 그럼에도 캐나다에서는 총기 살인이 거의 없다. 외국인이나 흑인이 많은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문을 열어 놓고 산다. ‘왜 문을 열어 놓고 계세요?’ 무어 감독의 질문에 집주인이 답한다. ‘왜요. 열어 놓으면 안 되나요?’ 여기에 비해 미국은 살벌하다. 문에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를 하고 산다. 그러고도 한 해 1만 명 이상이 총기로 목숨을 잃는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학교 가는 대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캐나다 학생들이 클로즈업 된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 그래도 표정이 밝다. 미래가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뭐 그리 두려울 게 있느냐는 반응이다. 의료보장 등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 사회, 누구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임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성공과 실패의 명암이 분명하다. 취약한 사회안전망 때문에 패배자는 설 자리가 없다. 컬럼바인 사건의 두 학생처럼 어쩌다 사고를 쳤거나 공부를 못하면 졸업과 함께 가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패배한 자의 절망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차가운’ 사회이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 역시 차가운 현실에 성장의 작은 조각 하나 손에 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희망이 아닌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절망이 번지고 있다. 점점 더 심해지는 학교폭력, 세계 최고의 자살률, 사이버 공간에서의 도를 넘는 폭언 등 그 징후가 뚜렷하다.
가야 할 길은 하나, ‘따뜻함’을 더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너도나도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렵고 복잡하다. 재원부터가 바로 문제다. 제대로 확보하자니 시장에 무리가 가고, 없이 어찌하자니 국가재정에 무리가 간다.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그대로 두고 ‘따뜻함’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시장은 시장대로 키우면서 그 속에 ‘따뜻함’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를테면 기업이 세금을 더 내놔도 괜찮을 정도의 경쟁력을 가지게 하는 일, 이익배분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일 등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불편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산업구조도 바꾸어야 하고 인력 양성 체계나 자본시장도 혁신해야 한다.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집으로 치면 대대적인 수리이다. 기업과 노동자는 물론이고 대학과 시민사회 등 너나없이 한동안 큰 불편과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제대로 된 정치라면, 또 그 지도자라면 이 일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수리할 것인지를 제시한 뒤 이를 위해 인내하고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와 정치지도자들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인내와 양보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줄곧 무엇을 해 주겠다는 약속만 해 왔다. 곧 허물어야 할 방에 새로 벽지를 발라 주겠노라 약속한 것도 많다.
박근혜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엇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계속해 왔다. 더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 명확한 설계를 제시하면서 인내와 양보를 요청할 수 있는 리더십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의도 정치는 앞으로도 계속 엉망일 터, 그나마 기댈 곳이 대통령과 행정부이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마나 인내하고 양보할 여력이 있다. 경제도 조금씩은 성장하고 있고 국가의 재정건전성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다시 집수리에 비유하자면 찬바람 막아가며 수리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그러나 경기 전망은 여전히 좋지 않고 이런저런 요구는 계속 쏟아지고 있다. 이 여력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다. 만일 이 여력조차 없어지면 수리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인내와 양보를 요청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기를 바란다.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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