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장 인선이 속도를 낼 모양이다. 상당 기간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기관장이 있어도 바뀔 것을 예상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던 공기업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공기업 사장은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인 데다 앞으로 진행될 공기업 개혁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관심이 크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공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역할도 다양하다. 현재 기획재정부의 경영평가대상기관은 한국전력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 30개를 포함해 295개나 되며, 이들의 총예산은 정부 예산의 1.7배에 육박하고 있다. 전기, 수도, 교통 등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것도 공기업이다.
공기업은 산업화를 경험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영국은 대처 총리의 민영화 조치 이전까지 우편, 전력, 철도, 조선 등 국가기간산업에서 공기업의 비중이 높았던 대표적인 국가였다. 최근 부상하는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에서도 공기업의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화를 구가하던 1963년부터 1972년까지 연 9.5% 고도성장기에 공기업은 그보다 높은 연 15%씩 성장했다. 하지만 탈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공기업의 위상과 역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공기업 개혁은 새로운 정부의 단골 메뉴가 됐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영국의 철도민영화는 공기업 개혁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지만, 그 평가는 양면적이다. 1950년대 초반 영국철도는 여객수송의 17%, 화물 42%를 담당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민영화 직전인 1993년에는 각각 5%와 6% 수준까지 떨어졌다. 영국 정부는 투자를 확대하고 생산성 위주로 조직개편을 하는 등 효율성 제고에 노력했으나 성과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국영철도인 브리티시 레일(British Rail)은 민영화되었다. 하지만 민영화 이후에도 부실경영과 연이은 대형사고로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며, 서비스 질이 떨어지는데도 철도요금은 계속해서 올랐다. 주목할 점은 정부가 운영하든, 민간이 운영하든 영국철도의 고비용 문제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그 부담은 여전히 국민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수혈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 최근 폭염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한국전력의 발전과 배전부문을 단계적인 경쟁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2002년 최초 매각 대상으로 선정된 남동발전의 민영화 추진이 노조의 반대와 매각 입찰 회사들의 인수 포기로 좌절되면서 결국 한전은 전력거래소와 6개의 발전자회사라는 현재의 기형적 체제로 굳어졌다. 그 결과 당초 의도했던 원가 절감이나 요금 인하 등의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고, 최근에는 각종 비리에 최고위층까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뭇매를 맞고 있다.
정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6위로, 산업용 전력소비량 4위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율은 11.7배로 미국과 일본의 1.5배 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높게 설정되어, 5인 이상 빈곤 가구의 전기요금 단가가 1인 고소득 가구보다 훨씬 높은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력을 많이 쓰는 산업용의 전기 요금은 원가보다 낮게 책정됨으로써 기술혁신을 통한 기업의 전력사용량 감축을 기대하는 것 역시 어렵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MB) 정부는 전력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한국전력도 송배전망 지능화 등에 연간 4조7000억 원 수준의 투자를 계속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의 국제 단가가 10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는 동안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1990년대 이후에만 2배 이상 인상되었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전력서비스 개선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계속되는 폭염에 정부는 국민에게만 끊임없는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영국의 철도민영화 사례에서 보듯 기관의 지배구조 변경이나 경쟁체제의 도입만으로 공기업 개혁의 성과를 담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추진 과정에서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서민에 대한 역차별 문제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선진화를 지향한 MB정부 5년 동안 공기업이 이룬 가시적인 성과 중 백미(白眉)는 부채의 증가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비효율적인 공공투자 확대와 공기업의 외형적 성장보다는 공공서비스의 원가 개념을 확립하고, 가격구조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현 시점에서 필요한 공기업 개혁이자 창조경제의 시작이다. 새로운 공기업 수장(首長)의 임명과 함께 서민경제에도 햇살이 깃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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