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유시민의 연좌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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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올해 2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 뒤 내놓은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다. 그는 “가족사를 탐색해보라”며 “막연히 내 인생, 내 소신대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하나씩 짚어보니 의외로 나의 성격, 가치관, 생활 방식, 취향이 생물학적 문화적으로 가족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의 아버지가 물질적으로 물려준 것은 없어도, 뭔가 새로 알게 될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물려줬다는 대목도 들어 있다.

▷그래서였을까. 유시민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홈페이지에 올린 ‘대화록의 진실’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부모와 처가, 형과 누나의 가족사를 탐색해 썼다.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작년 대선 직전 ‘최초 공개’한 사람이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라며, 그 이유를 ‘뼈대 있는 가문’에 ‘친일-반공-보수 세력의 총아’라는 개인사와 연결해 해석했다. 사람을 치켜세웠다가 후려쳤다가 하는 현란함은 여전했지만 남의 가족사를 파헤치는 것은 연좌제(緣坐制)와 다름없다. 사람은 부자간은 물론이고 형제간에도 다른 경우가 많다.

▷유시민 자신도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때 부친의 친일 행적 여부에 대해 답한 적이 있다. “일본국 동경도 준대상업학교를 나와 1943년 2월부터 1945년 7월까지 만주국 통화성 쾌대무자촌 국민우급학교에 재직한 기록이 남아 있다.” 비자발적인 가족사 공개가 유쾌했을 리 없다. 그의 정치적 신념이나 행적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유시민을 따라다닐지 모를 수식어,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하는’ 특성이 부친한테서 비롯됐을 리 만무하다.

▷유시민의 학생운동 동지였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를 놓고 “김일성 찬양론자 특강에 대한민국 엄마들이 뿔났다”는 시위가 올해 초 벌어졌다. 한홍구의 부친은 출판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킨 일조각의 창립자 고 한만년 선생이다. 한홍구의 형인 한경구 서울대 교수도 그와는 결이 다르다. 애먼 남의 가족사를 들먹이지 않았다면 유시민의 노무현 전 대통령 옹호는 좀 더 무게 있을 뻔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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