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시받고 회의록 삭제했다”는 진술, 수사로 규명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노무현 청와대에서 안보정책비서관을 지낸 조명균 씨가 올 1∼2월 검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할 때 참고인으로 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지원(e-知園) 시스템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씨는 국정원에 한 부 보관돼 있다는 걸 감안해 자신이 직접 이지원에서 삭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애당초 있지도 않은 회의록을 찾기 위해 1주일 이상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떤 셈이다. 국민을 이렇게 속여도 되는 것인가.

어제 국회 운영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조 씨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런 결론조차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기록관 게이트’ 운운하며 이명박 정부가 파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에는 눈을 감고 정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몰염치한 태도다.

노 전 대통령이 정말로 회의록 삭제를 지시했는지, 지시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여야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관련자에게는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 씨가 그동안 침묵을 지킨 이유도 규명해야 한다. 조 씨가 검찰에서 폐기 사실을 털어놓았다면 노 전 대통령 측 인사 중 일부도 그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원본의 열람을 제의한 문재인 의원이나 원본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온 민주당은 정말로 모르고 있었는지도 가려야 한다. 모든 의문을 해소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열람이 어려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는 대신에 후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 보관된 회의록을 쉽게 볼 수 있도록 이지원의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백 보를 양보해 그런 선의(善意)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대통령기록관에 원본을 보내지 않을 이유가 안 되며,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무단 폐기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여야 합의로 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열람하기로 한 것은 국정원이 갖고 있는 회의록 공개로 촉발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관련 발언이 왜곡 또는 조작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정원이 갖고 있는 정상회담 녹음파일을 공개하는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먼저 진위 확인을 요구했던 것이므로 반대할 명분이 없다. 녹음파일을 공개하고 검찰 수사가 끝나면, 여야가 함께 NLL 수호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이번 소동을 정리해야 한다.
#노무현#조명균#NLL#남북정상회담 회의록#지시#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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