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어제 개성공단 재가동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10일 기업 관계자들이 방북(訪北)해 공단의 설비와 장비를 점검할 수 있게 됐고, 완제품과 원부자재를 내올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북한이 4월 3일 연례 한미 군사훈련과 이른바 ‘최고 존엄’ 모독을 꼬투리 잡아 일방적으로 통행을 차단한 이후 95일 만에 정상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존폐 기로에 섰던 개성공단이 극적으로 활로(活路)를 찾게 된 것은 남북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북으로서는 매년 9000만 달러에 가까운 임금수입을 벌어들이는 ‘달러 박스’이자 5만3000여 명 근로자와 직계가족 20여만 명의 생계수단인 개성공단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본격 가동을 위해 원칙은 지키되 개성공단의 영구 폐쇄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95일 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데 만족해선 안 된다. 북한은 2004년 개성공단 본격 가동 이후 걸핏하면 정치적 군사적인 이유로 출입을 차단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공단을 폐쇄하는 일이 없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보장 받아야 한다. 10일 개성공단에서 있을 당국 간 회담에서는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장기 중단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분명히 하고, 북측 당국에 책임 있는 해명과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 사이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기업 주장에 따르면 3개월 가동 중단 사태로 입은 재산과 경영상 피해가 1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남북 당국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한다 해도 기업인들이 비전을 잃어버리면 생산기지를 옮길 수밖에 없고 개성공단의 존재가치는 엷어진다. 정상적으로 임금을 주고도 언제 가동이 중단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완제품 반출조차 못하는 곳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남측 수석대표로 나선 서호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북측이 매우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측은 남측 기업에 준 피해 책임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10일의 ‘정상화’ 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태도가 주목된다. 개성공단의 성공적 재가동을 전반적인 남북관계 복원과 신뢰 회복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작은 신뢰가 쌓인다면 남북 당국 간 고위급 회담에도 푸른 신호등이 켜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