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원폭 칼럼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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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반한 극한 시위 모습 양국 TV에 자주 등장하지만
한국 국민들 이젠 여유가 있고 일본 국민도 정치인보다 침착해
극단적인 곳에 눈돌리지 말고 양국이 힘모아 북핵 대처해야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이 투하된 것은 일본에 대한 신의 징벌이었다는 칼럼이 한국의 유력지에 실려서 놀랐다. 피폭자뿐 아니라 많은 일본인이 분노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만약 신의 징벌이었다면 그 원폭으로 많은 한국인도 피해자가 된 것은 무슨 연유인가. 같은 민족이 피로 피를 씻어, 원폭 이상의 사망자를 낸 한국전쟁은 무슨 징벌이었던가.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을 묻고 싶어졌다. 전쟁의 어디에도 신의 의지 같은 것은 없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을 떠난 인간들의 가장 추악한 행위이며, 원폭은 그 종착지였다.

칼럼의 발단이 된 것은 ‘731’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기체에 731이라는 번호가 쓰인 자위대 연습기에 시승한 모습이 중국과 한국을 자극했던 것이다. 구 일본군 731부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생화학무기를 만들기 위해 포로를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해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은 일본 오욕의 역사다. 그런데 굳이 731 기체에 탑승한 것은 무슨 생각에서인가. 이런 소식을 전한 한국에서의 보도 흐름이 ‘원폭은 징벌’이란 칼럼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자위대도 일부러 731을 선택했을 리가 없고 악의는 전혀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연한 사건을 너무 요란하게 다루지 말았으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번호의 기체를 준비한 자위대도 너무 무신경했다. 731이라는 숫자에 과잉 반응하는 한국과 너무 무딘 일본. 이 간극이 요즘 한일 간의 엇갈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요즘 한일 관계는 너무 냉랭하다. 지난해부터 험악해진 관계를 양국의 새 정부가 재건해줄 것이라는 바람은 지금 현재 완전히 빗나갔다. 내가 서울생활을 시작한 3월부터는 점점 더 악화됐다. 일본유신회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대표의 입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문제의 발언이 튀어나왔고, 이번에는 한국에서 ‘원폭 칼럼’이 등장했다.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증오 섞인 발언)’를 반복하는 저열한 반한 시위 모습이 한국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일본 TV에서는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총리 등의 사진을 짓밟는 자극적인 영상이 보도되고 있다. 이것만 보면 개전 전야를 방불케 한다.

문득 예전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김진명 씨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3년 발매)를 떠올렸다. 남북한이 극비로 핵무기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를 군사 점령한 데 맞서 일본 무인도에 핵이 발사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핵 공격의 ‘고(go) 사인’. 충격적인 줄거리는 일본에서도 화제가 돼 이듬해 번역본이 발매됐다.

황당무계한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 보면 당시와는 조금 다른 현실감이 느껴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우선 ‘설마’ 하고 생각한 핵 개발이 실제 상황이 됐다. 물론 남북 공동은 아니지만 북한이 정말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반복하고 있다. 소설의 다른 한편에선 일본은 1990년대 들어 헌법 제9조를 개정하고 군사강국이 된다. 현실은 크게 다르지만 최근 일본 총리가 헌법 9조 개정과 국방군 창설의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다케시마’는 어떨까. 영유권 분쟁이 점차 가열돼 충돌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마침내 한일 간 증오의 응수로 이어지고 있다. 소설이 나온 1993년은 일본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당시 총리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과거를 확실하게 사과한 역사적인 해였다. 이를 시작으로 1990년대 양국 관계는 호전돼 갔던 만큼 당시엔 시대착오적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역행해 버린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31년 전 서울에 유학하던 시절에도 대단한 분규가 일어났다.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왜곡됐다”고 지탄받아 한국의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연일 일본을 표적으로 해 지내기가 어려웠다. ‘일본인 사절’이라고 써 붙인 식당이나 택시까지 생겨났고 술집에선 모르는 남자가 나에게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오랜만의 서울생활을 시작하니 이런 상황이다. 혹시 내가 불길한 역귀(疫鬼)인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다만 당시에 비해 한국 국민이 상당히 여유를 보이고 있는 점은 기쁘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대다수 국민은 정치인보다 침착하다.

그 증거로 그 발언 이후 하시모토 씨의 인기는 완전히 떨어지고, 일본유신회는 위기에 처했다. 헌법 개정론 분위기도 살아나지 않고, 아베 총리의 열기도 조금씩 식고 있다. 물론 ‘다케시마’에 대한 무력행사 등은 누구도 꿈도 꾸지 않고 있다.

서로 극단적인 부분에만 눈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남북한의 공동 핵 개발은커녕 지금 해야 할 일은 한일 양국이 북핵에 함께 대처하는 것이다. ‘무궁화 꽃’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반일#반한#아베#신의 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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