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순결을 상품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으로 생각했던 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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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리처드슨의 ‘클래리사’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18세기 초 문자 사용 인구가 늘고 인구 이동이 증가하면서 서신 교환이 활발해졌다. 인쇄업자인 새뮤얼 리처드슨은 서신을 격식 있고 조리 있게 쓰는 법을 보여 주는 모범 서한집을 펴낼 생각을 한다. 그는 고용살이 하는 어린 딸이 부모에게 보내는 안부편지를 본보기로 서한집 집필을 시작했다.

딸은 섬기던 주인마님이 돌아가셨지만 그 아들인 젊은 주인이 아주 친절하니 안심하시라고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 부모는 깜짝 놀라서 그 ‘친절남’을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상황은 긴박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영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소설로 인정받는 ‘파멜라’(1740년 출간)의 출생 내력이다.

이렇게 탄생한 ‘파멜라’는 전 영국을 흥분시켰다. 여주인공 파멜라는 어린 소녀지만 당시 새로운 중산계급으로 부상하던 청교도의 윤리관을 대표한다. 그의 상대는 전통 지주계급의 전형적인 방탕아로 파멜라의 정조를 유린하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을 동원한다. 파멜라는 자신의 정조를 필사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위세 좋은 나리를 굴복(감복)시켜서 정식 청혼을 받고, 결국 지주의 마님이 된다.

파멜라의 승리에 신흥 중산계급은 환호하고 전통 귀족은 분노했다. 후자는 파멜라의 ‘정조’를 몸값을 높여 지주의 마님이 되기 위한 계략으로 매도했다.

파멜라의 작가인 리처드슨은 이 비난과 의심이 너무 억울해서 몇 년에 걸쳐서, 아무도 그 고결성을 의심할 수 없으며 ‘정조’의 대가로 아무것도 얻어 내지 않고 오히려 지상의 모든 것을 잃는 고귀한 여성을 창조했다. 남녀 주인공이 각각의 절친한 친구, 몇 명의 지인과 교환한 편지 모음 형식의 ‘클래리사’(1748년 출간)는 100만 단어가 넘는 분량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소설(연작이 아닌 단일 소설로는 최장으로 ‘레 미제라블’이나 ‘전쟁과 평화’의 두 배 분량)이다.

이 소설의 기적은 길이가 아니고 그렇게 길지만 계속 마음 졸이며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긴 소설을 이루는 수백 통의 편지가 각기 필자의 성격이 뚜렷하고 문체가 각기 다르다는 것은 진정 경이로운 일이다. 줄거리는 요약하면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음모, 속임수가 획책되고 실행되고, 단어, 동작, 사건 하나하나가 여러 각도에서 면밀히 검토되고 해석된다. 이 소설에서 서신은 필자들이 위기와 당혹, 희망과 절망 속에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공감과 위안을 얻는 유일한 방편이어서, 영국소설은 최초의 작가 리처드슨으로부터 탁월한 내면 분석의 전통을 물려받게 된다.

여주인공의 죽음이 온 유럽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이 소설의 영향력은 폭발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인 평론가 테리 이글턴은 도덕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이 부도덕한 전통귀족에게 정신적으로 승리하는 내용의 이 작품이 영국에서 계급투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취약했던 여성의 처지를 강력하게 대변했던 이 소설도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즉 여성 굴레를 벗겨 주지는 못했다. 17, 18세기 유럽에서는 상업 발전으로 중상류층이 급격히 증가했고, 따라서 ‘숙녀’로 격상된 여성이 많았다. 그러나 ‘숙녀’로의 신분상승이 곧 축복은 아니었다. 숙녀는 육체노동을 면제받는 반면 억지로라도 고상해야 했고 무엇보다 정절에 일말의 의혹도 없어야 했다. 경제활동에서 완전히 배제된 ‘숙녀’는 경제력을 가진 남성이 구매하는 상품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여성 편력이 트로피였지만 정조를 잃은 여성은 가문과 사회에서 축출되었고, 결국 거리의 여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정조에 프리미엄이 붙자 남성들의 약탈본능이 ‘정조 사냥’으로 쏠리게 되어 집요한 유혹은 물론이고 사기 결혼을 비롯한 온갖 함정이 설치됐고, 이 덫에 걸려 피눈물을 흘리는 여성이 속출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러브리스는 자신의 가치를 자기 때문에 신세를 망친 여성의 수와 동일시하는 병적인 약탈자다. 리처드슨은 여성의 수난을 가슴 아파했으나 정절 깊은 여성을 찬미하는 그의 소설들은 또한 ‘정조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클래리사’는 결혼에 있어서 젊은 여성의 선택권 신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18세기 소설에는 부모가 신랑감을 지정해 통보하는 장면이 예사로 등장한다. 클래리사는 순종적인 딸이지만 외모는 물론이고 지적, 도덕적으로 역겹기 짝이 없는 솜즈와의 결혼은 수락할 수가 없다. 부모는 딸의 애원을 외면하고 냉혹하게 파멸로 내몬다. 이 책의 영향으로 젊은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할 권리가 신장됐고, 결혼에서 ‘사랑’이 필수요소로 인식되게 됐으나 이는 여성이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18세기 후반 전 유럽을 풍미했고, 모방소설을 양산했던 ‘클래리사’는 오늘날 그 길이 때문에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소설로 간주되고 있다. 많은 여성이 정조를 다만 상류사회의 신분증처럼 사수했던 여성의 수난기에 정조를 그 상품가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위해 지키려 했던 고결한 여인 클래리사의 향기가 잊혀진 것이 애석하다.
● 클래리사 줄거리는

클래리사의 비극은 원치 않았던 행운에서 시작된다. 사업으로 큰 재산을 모은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장남에게 집중해 장남이 작위를 받게 하려 한다. 그러나 클래리사를 몹시 사랑한 할아버지는 자기 재산의 일부를 클래리사 앞으로 남긴다. 아버지와 오빠는 재산 때문에, 언니는 자기 신랑감으로 추천된 러브리스라는 방탕한 귀족이 동생 클래리사에게 반해서, 클래리사는 가족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다.

백작의 조카이자 후계자인 러브리스는 여성편력이 취미이자 특기이며, 삶의 목적이자 보람이다. 잘생긴 외모, 예리한 두뇌와 능란한 언변으로 수많은 여인을 유혹해서 농락한 그는 정숙한 여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호언하지만, 클래리사를 만나면서 그 신념이 흔들린다. 한편 클래리사의 오빠와 가족들은 클래리사를 솜즈라는 무식한 부호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솜즈와 결혼하라는 성화가 숨통을 조여 올 때 클래리사는 러브리스에 의해 납치된다. 클래리사는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하지만 러브리스는 클래리사를 위한 최선책을 찾는 척하며 시간을 끈다. 딸이 러브리스와 도망쳤다고 믿는 부모에게 절연당한 클래리사는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러브리스는 클래리사에게 런던에 거처를 주선해 준다며 사창굴의 포주와 창녀들을 집주인과 그 조카딸들로 위장시켜 가짜 셋집에 입주하게 하고 자신도 같은 집에 이사 온다. 클래리사는 이제 러브리스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불명예를 감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족이 러브리스를 받아들이고, 러브리스의 진심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에는 그와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

러브리스는 막연한 청혼을 되풀이하면서 현란한 애정 공세를 펴 클래리사의 방어를 무너뜨리려 하고 클래리사는 점점 더 곤혹스럽고 불안해진다. 밤중에 집에 불을 질러서 클래리사의 방에 침입하려다가 실패한 러브리스는 결국 클래리사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겁탈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힌 클래리사는 러브리스와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러브리스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몰래 하녀의 옷을 걸치고 무작정 탈출한다.

겨우 러브리스의 마수에서 벗어난 클래리사는 초라한 거처에서 식음을 폐하고 급속히 쇠약해져 간다. 재산을 정리해서 가족, 친지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러브리스에게도 용서의 편지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클래리사의 사망 소식을 들은 러브리스는 후회와 자책에 미쳐 날뛴다. 클래리사의 사촌이 자신을 단죄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 러브리스는 깊은 상처를 입고 고통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둔다. “이로써 내 죄가 씻기기를!”이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음 주에는 헨리 필딩의 ‘톰 존스’가 소개됩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새뮤얼 리처드슨#클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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