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용호]학교폭력 가해학생의 부모님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4일 03시 00분


이용호 시인·상계고 교사
이용호 시인·상계고 교사
저는 20년 넘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사이며 아이 둘을 키우는 학부모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직도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학생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주로 같은 나이의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의 실상을 잘 파헤치고 들어가면 가해 학생 학부모의 어긋난 자식 사랑과 이기적인 현실 인식, 그릇된 사고가 더 큰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학교 폭력을 신고하는 피해 학생들은 참다 참다 정말 어찌할 수 없을 때 담임선생님이나 생활지도부에 신고합니다. 아직도 학교 폭력을 신고하는 것을 고자질하는 것으로 여기는 추세에, 신고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장난으로 그런 걸 갖고 유난을 떤다. 뭘 그까짓 걸 다 신고하느냐?”라며 자신의 잘못,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더 심한 경우 가해 학생의 부모는 “왕따인 댁의 애와 놀아 준 것도 죄냐? 그냥 툭툭 찬 걸 가지고, 애 험담을 좀 한 것 갖고 학교 폭력으로 몰아 대면 이 세상에 학교 폭력 아닌 게 어디 있느냐?” 등의 반응을 보이며 증거를 들이대라고 피해 학생 측을 윽박지르기도 합니다.

심지어 피해 학생을 거짓말쟁이나 정신질환자로 몰아 대며 동네에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아이와 놀지 마라. 같이 놀다가 다치면 학교 폭력으로 신고당한다” 등의 이야기를 같은 동네에 퍼뜨리는 몰염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폭력과 노는 것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 폭력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게 되면 “누구 앞길을 막으려고 하느냐?”라면서 피해 학생과 학부모를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피해 학생이 그저 꾹 참으면 되지, 왜 자기 자식을 전과자로 낙인찍으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자신의 아이가 이런 고통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학교 현장에서 보면 가해 학생의 학부모는 폭력의 증거나 목격자가 있는지, 심각한 외상이 있는지를 따지면서 자식의 잘못을 덮는 데 급급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요새 가해 학생들은 거짓말을 참 잘합니다. 물질적인 증거나 목격자가 없으면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목격자나 물질적인 증거 등은 확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주변 아이들도 증인으로 나서는 데 큰 부담을 느낍니다. 아이들에게 녹음기나 동영상 촬영 장치를 부착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가해 학생의 학부모님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모가 먼저 자식의 학교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식은 자신의 행동이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신고한 피해 학생을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부모가 자식의 작은 잘못부터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를 반성하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작은 괴롭힘에서 출발한 자식의 폭력적 성향은 나중에 범죄의 원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피해 학생과 그 부모님께 성심을 다해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만이 자식을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 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장난이라도, 의도적인 악의가 없을지라도, 상대방이 괴로워하면 그건 학교 폭력입니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법입니다. 오늘도 학교 폭력으로 인해 많은 학생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가해 학생의 부모님들은 제 말씀을 꼭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의 아이가 학교 폭력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용호 시인·상계고 교사
#학교폭력#가해학생#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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