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후보 단일화 드라마는 재방송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9일 03시 00분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대선의 최대 변수인 야권 단일화가 급물살을 탔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만나 후보 등록 전에 단일화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제 문, 안 후보 중 누가 단일화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후보 중 누구로 단일화가 돼야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을지, 박 후보는 야권 단일화 이벤트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현시점 단일화 勝者 예측은 무모

현시점에서 단일화 경쟁의 승자(勝者)가 누가 될지 예측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한국 선거는 돌발 변수에 의해 불확실성이 높고, 문 후보는 조직과 후보 적합도, 안 후보는 변화 이미지와 경쟁력에서 앞서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국민경선 또는 여론조사 등 어떤 단일화 방식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수 있다. 2002년 대선 때같이 여론조사 방식을 채택할 경우, 새누리당 지지자의 역(逆)선택 방지 기준과 질문 문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까지는 안 후보가 문 후보보다 본선 경쟁력에서 다소 앞선다. 선거는 구도와 연대의 싸움인데 안 후보는 박 후보를 상대로 ‘미래 대 과거’의 유리한 구도를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안 후보는 한국 대선을 결정짓는 40대, 중도, 화이트칼라, 수도권, 무당파층에서 우위를 보이며 표의 확장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안 후보가 박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줄곧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서는 이유다.

반면 문 후보가 박 후보와 격돌할 경우에는 참여정부 실패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과거 대 과거’의 구도가 만들어진다. 문 후보는 위에서 언급한 5대 계층에서 박 후보를 압도하지 못해 외연 확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각종 여론조사 결과 새누리당 재집권보다 정권교체를 기대하는 여론이 높기 때문에 지금 열세인 문 후보 쪽으로 단일화돼도 어느 정도 상승효과가 있을 수 있다.

단일화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단일화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이미 단일화 시너지 효과가 현재 두 후보 지지율에 상당 부분 포함돼 있어 극적 효과가 없다는 부정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상당기간 단일화 과정 자체가 대선 정국의 이슈와 주도권을 장악할 것이며 단일화 과정이 얼마나 감동을 주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질 것이다.

2002년 盧-鄭 단일화의 추억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사가 던지는 교훈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통 큰 양보를 하는 모습을 보이며 승부를 주도하는 측이 유리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 후보는 단일화 협상 막판에 마지막 걸림돌인 ‘무효화 조항’을 전격 수용했다. 이 조항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나올 경우 조사 결과를 무효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노 후보 핵심 측근들은 “여론조사 무효화 및 파기 조항이 삽입되면 조사 결과에 따라 단일화 합의 자체가 무의미해지거나 불복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노 후보는 반대를 무릅쓰고 협상을 관철시켜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켰다.

둘째, 단일화의 목표를 서로 합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일화 승자가 패자를 포용하지 못하면 언제 깨질지 모를 ‘크리스털 단일화’가 될 수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노-정 단일화가 투표 전날 깨진 것이 이를 보여준다. 왜 단일화를 해야 하고 단일화가 왜 진정 새 정치인지를 국민에게 설득하지 못하면 단일화는 공허해진다.

셋째, 박 후보가 단일화 효과를 극복하려면 단일화에 버금가거나 상쇄할 만한 파격적인 쟁점을 내놓아야 한다. 2002년 11월 15일 노-정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되자 당시 한나라당이 보인 행태는 네거티브 대응 일색이었다. “단일화는 야합이다”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은 선거법 위반이다”라는 데 비난의 화력을 집중했다.

후보 단일화 드라마는 재방송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후보는 최근 “국민의 삶과 상관없는 단일화 이벤트로 민생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문 후보의 구걸 정치와 안 후보의 타이밍 정치가 결합한 꼼수와 반칙의 ‘참 나쁜 단일화’”라고 비판했다. 비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박 후보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누리당에 새로움을 다시 채우는 대변혁을 이뤄야 한다. 인의 장막의 위험에 빠져서도 안 된다. 구름 밑에서는 비가 오고 있는데 본인은 청명한 구름 위를 걸을 것인가. 땅을 딛고 ‘새근혜’의 길을 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몸뻬 바지도 입고 대중목욕탕에도 갈 수 있는 파격적인 서민 행보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야권의 후보 단일화 폭풍을 견뎌낼 수 있는 내공이 쌓일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joon57@mju.ac.kr
#후보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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