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국정 관련 기록물을 제대로 인계하지 않은 데다 기록물 사본을 사저(私邸)로 무단 유출해 크게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대통령이 재임 중 생산한 기록물은 국가의 소유라는 점에서 명백히 잘못된 처사였다.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느냐를 놓고 여야 간에 공방전이 일면서 대통령 관련 기록물의 열람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발언 여부는 회담록 내용을 확인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
2007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반적인 비밀기록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지정기록물’이라는 항목을 따로 두었다. 지정기록물은 지정권자인 대통령 본인 외에는 10년, 15년, 30년의 보호기간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열람할 수 없고, 보호기간 내에 열람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게 했다. 군사 외교 통일에 관한 비밀뿐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사생활과 정치적 견해를 담은 기록도 지정기록물로 지정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기록원에 넘긴 825만여 건의 기록 중 34만 건이 지정기록물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은 보호기간 30년의 지정기록물로 분류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시사 발언 여부는 우리의 주권과 관련된 엄중한 사안이다. 실제 그런 발언을 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향후 대북정책 수립과 대처를 위해서도 반드시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다. 30년의 보호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현행법을 존중한다면 여야 합의로 열람이 가능한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해법이다.
물론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것이거나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기록물은 일정 기간 비공개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정기록물이라는 것을 만들어 퇴임 대통령이 임의로 최장 30년까지 내용은커녕 목록조차 아무도 못 보게 대못질을 한 것은 국정의 연속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이 무슨 숨길 것이 그렇게 많았을지도 궁금하다. 잘못된 법은 지금이라도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