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17세 소년병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에 귀순한 다음 날인 7일 김정은은 국가안전보위부를 찾아 “불순 적대분자들은 단호하고도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군부대를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충성을 독려했지만 하전사(병사)가 소대장과 분대장을 사살하고 탈출하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으니 김정은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가 “원수들의 사상 문화적 침투와 심리모략 책동을 짓부숴버리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며 남한에 대한 경각심을 주문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은 휴전선 전방에 엄선한 병사를 배치한다. 특히 북한군 2군단 6사단이 관할하는 경의선 남북관리구역 북측 초소에는 출신 성분이 좋은 최정예 병사를 투입한다. 북한군은 500m 건너편 한국군 초병과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한국 근로자들을 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당성(黨性) 강한 병사들을 그곳에 배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전사가 상관들을 사살하고 탈출했으니 북한군 지휘부가 공황상태에 빠졌을 법하다.
올 하반기에 3명의 북한군이 잇따라 귀순했다. 8월에는 하전사가 서부전선으로, 지난주에는 하전사가 동부전선으로 귀순했다. 북한군 내부의 불만이 심각한 정황을 말해준다. 군 출신 탈북자들은 북한군에 음주와 구타, 군수물자 착복과 유용이 횡행한다고 증언한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은 보위사령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북한군의 기강 해이와 민간인 상대 강탈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과거 소련이 무너질 때나 지난해 이집트 혁명에서 보듯 독재정권은 군이 등을 돌리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붕괴한다. 북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귀순한 북한 병사는 17세다. 북한 청소년들은 16세에 신체검사를 받고 이르면 17세부터 군에 입대한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소년들이 총을 들기 시작해 10년 동안 군인으로 살아간다. 우리 같으면 고교와 대학을 다니며 인생을 한창 준비할 시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왜소한 소년병들이 잘 먹고 잘 입은 남한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교육받은 내용이 틀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