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정석]치안 없는 복지는 허상이다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정석 경찰청 차장
김정석 경찰청 차장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좀 더 많은 사람이 균형 있게 잘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에는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이 큰 이슈로 제기됐고, 올해도 대선을 앞두고 각종 복지 정책들이 핵심 공약으로 발표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온통 복지에 쏠려 있다. ‘먹고 사는’ 시대를 넘어 ‘잘사는’ 혹은 ‘행복하게 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복지담론은 이런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복지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무언가 중요한 가치 하나를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치안’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치안은 복지처럼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는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책 우선순위에서 복지 다음이 될 수는 없다. 복지가 더 잘사느냐 못사느냐는 삶의 질의 문제라면, 치안은 지금 당장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이 확보되느냐 안 되느냐의, 좀 더 기본적인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치안은 복지보다 우선으로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치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부 예산을 보더라도 복지 관련 예산 비중은 2008년 28.5%에서 2012년 31.2%로 늘었지만, 치안 예산은 같은 기간 3.0%에서 2.7%로 줄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지표로 보는 오늘의 한국 2010’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치안 예산의 비율은 0.42%로, 영국 1.43%, 미국 0.87%, 일본 0.83%와 비교해 턱없이 적다.

이처럼 치안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나타나는 폐해로 대표적인 사례가 경찰력 부족 현상이다. 최근 5년간 112신고는 59.8%, 5대 범죄는 18.5%, 교통사고는 4.8% 증가했다. 치안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경찰 인력은 5.5%(5628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전의경 대체 인력(4866명)을 제외하면 순수 증원은 0.7%(762명)에 불과하다.

지금 일선 현장에서는 범죄 예방을 위한 순찰활동은 고사하고 밀려드는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데 허덕이고 있다. “만성 피로 때문에 사무실에서건 집에서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일선 경찰관들의 푸념이 들릴 때마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경찰 인력 부족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장에서의 인력난은 최근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부녀자 성폭행 살인 등의 흉악 범죄, 사회 부적응자에 의한 이상 동기 범죄 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예방 치안의 부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범죄 안전망이 약해지면 부녀자 아동 등 사회적 약자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에게 범죄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약 27%나 증가했다. 방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고급 아파트보다는 다세대 연립주택이, 백화점 대형마트보다는 동네 슈퍼 등 영세 상점이 범죄 위험에 훨씬 더 많이 노출돼 있다. 치안 양극화 문제가 좀 더 심각한 사회갈등을 야기하기 전에 범죄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 전문가들도 치안양극화가 경제양극화보다 더 큰 사회갈등을 야기함은 물론 경제성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 차원에서 아무리 복지시책을 강화해 나간들, 지금처럼 치안 투자를 게을리해 범죄의 위험으로 불안을 느끼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복지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치안 불안으로 떠는 복지사회? 어불성설이란 아마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치안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김정석 경찰청 차장
#기고#치안#복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