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중현]빚지는 법, 빚갚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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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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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 차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지난주 안철수 후보는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빚’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발언들을 했다. “나는 정치 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다” “빚진 게 없는 만큼 공직(公職)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을 것” 등이다.

정치, 경제적인 빚으로부터 자유로운 ‘무(無)차입 정치’ 선언처럼 들린다. 때탄 정치와 고위 공직자의 회전문 인사 등에 신물을 느껴온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콕 집어내 다른 후보와의 차이점을 부각한 용의주도한 발언이기도 하다.

실제로 빚에 관한 한 안 후보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 후보는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상대적으로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만큼 주변에 이해관계자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갚아야 할 정치적인 빚도 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지 않겠다”는 안 후보의 약속은 파괴력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동아일보가 이달 초 ‘공공기관장 무늬만 공모’ 시리즈를 통해 집중적으로 지적한 대로 국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으로 변질된 공공기관장 인사 등 정권이 사람을 쓰는 방식에는 큰 개혁이 필요하다. ‘무차입 정치인’인 안 후보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박, 문 두 후보는 정치적인 부채에 대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이라도 해야 할 분위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안 후보는 상대적으로 빚에서 자유롭다. 성공한 기업인으로 수천억 원 자산을 가진 그라면 정당이나 주위의 금전적 지원 없이 선거전을 치를 수 있다. 심지어 결혼 후 집을 장만할 때도 양가 부모가 도와줬다니 일반 봉급생활자들이 운명처럼 짊어지는 주택담보대출 빚 부담도 크게 져본 적이 없을 것 같다.

안 후보는 채무가 없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회적 채권’까지 깔아 놨다. 그가 개발한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로 써온 PC 이용자들 사이에서 “안 후보를 찍어 고마움을 표시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박 후보는 경제기적을 이뤄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존경이란 채권을,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화 세력에 대한 386세대의 부채의식을 각각 계승했지만 젊은 세대가 안 후보에게 갖는 부채의식도 이에 못지않다.

개인 유저들에게 프로그램을 무료 배포해 시장을 장악한 뒤 기업, 공공기관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안랩의 영업 방식이 한국 PC 보안 산업의 성장을 막았다는 관련 업계의 비판도 안 후보의 열성 팬들 앞에선 괜한 발목잡기로 비친다.

하지만 빚이 없다는 게 대선후보의 신뢰도나 신용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가야겠다. 금융거래에서는 돈을 빌려 꼬박꼬박 원리금을 갚거나, 신용카드로 물건을 산 뒤 연체 없이 대금을 지불하는 게 신용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빚을 진 적 없는 사람은 빚을 갚는 과정을 평가받은 적이 없어 신용도가 오히려 낮게 나온다. 대선까지 남은 석 달간 몰려드는 인물들과 막대한 지출로 인해 안 후보의 정치, 경제적 채무는 단기간에 급증할 것이다. 큰 빚을 져본 적 없는 안 후보로서는 평생 처음 겪는 도전이다.

대통령은 엇갈리는 각계각층의 이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치적 빚을 지게 되는 자리다. 때로는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公約)을 포기해 유권자에게 빚을 지는 대신 다른 정책으로 빚을 갚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정치적, 경제적 빚의 유무가 아니라 부채를 현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대선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이 돼야 하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안철수#빚#정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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