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정치인의 고질병 ‘조망수용 장애’

  • 동아일보

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선거 때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면 죽는 거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에게 ‘자갈밭’인 서울 양천을에서 재선에 성공한 비결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선거 때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다. 격주로 민원의 날 행사를 열어 온갖 민원을 챙긴다. 그의 사무실엔 이런 글귀가 걸려 있다. ‘주민을 위해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그런 김 의원이 주민의 뜻과 거리가 먼 선택을 했다. ‘정두언 의원 구하기’에 총대를 멨다. 정치적 동지에 대한 의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말이 의아했다. “체포동의안 부결이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원내 지도부뿐이다. 원내 지도부가 만든 프레임에 언론도 덩달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 아니겠느냐.”

대다수 언론이 상황 인식이 형편없는 원내 지도부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한 발 더 나갔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다음 날인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 언론의 고질병은 사실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일단 문제부터 키우는 것”이라고 썼다. 자진 출두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법체계의 문제를 언론이 잘 몰라 엉뚱한 비판을 한다는 투였다. 하지만 이날 대부분의 신문은 정 의원이 제기한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머쓱했는지 정 의원은 이 글을 트위터에서 지웠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박근혜 사당화’ 논란이 불거지자 “언론 보도에 오류가 없도록 대책을 세우라”고 당 대변인실에 주문했다. 이쯤 되면 ‘망상’이다.

박근혜 의원도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캠프 실무진이 불통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언론과의 접촉을 늘리자고 제안하자 박 의원은 “내가 한 마디 하면 언론이 이리저리 비틀고 확대해석해 오히려 내 이미지만 더 나빠지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민주통합당의 ‘언론 탓’은 필살기에 가깝다. 이해찬 대표는 생방송 도중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을 한다고 전화를 끊어버린 뒤 되레 사과를 요구하는 ‘언론 탓’의 고수다. ‘나쁜 언론의 선동에 세뇌되지 말라’며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변칙에도 능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언론에 적개심을 드러내다가 임기 말 기자실에 대못질을 했다. 당시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이런 공격성을 ‘조망(眺望)수용 장애’로 진단했다.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해 타인의 시각이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현상이다. 통상 12∼15세면 조망수용 능력이 완성된다.

남 탓은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 마련이다. 정 의원이 궁지에 몰린 건 당이 친박근혜계 일색이기 때문이다. 이는 박 의원이 지난해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르면서 예견됐다. 박 의원을 전면으로 불러낸 건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여파다.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밀어붙일 때 선거판세는 이미 기울었다. 오 전 시장은 무책임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시의회를 민주당에 내주며 ‘식물시장’이 돼 버티기도 어려웠을 게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무상급식 프레임에 말려 참패했다. 그때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한 이가 바로 정 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해인 2007년 교수들이 선정한 한자성어는 ‘반구저기(反求諸己)’였다. 자기에게서 이유를 찾는다는 뜻이다. 남 탓 정치에 질린 탓이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정치인#조망수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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