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에서/조대식]뜨거웠던 리비아 첫 민주선거

  • 동아일보

조대식 주리비아 대사
조대식 주리비아 대사
7일 리비아에서 역사상 첫 민주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선거는 뉴 리비아의 헌법을 만들기 위한 제헌의회 의원을 뽑는 것이었는데 등록 유권자 280만 명 중 170여만 명이 투표에 참가해 60% 이상의 투표율을 보였다. 한반도의 8배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 국토의 90%가 사막 지역이라는 점, 40도 이상 폭염이 이어지는 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관심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이 예상보다 높았다. 필자가 외국인 게스트로 참관한 트리폴리 일부 투표소에서는 온몸을 히잡으로 둘러쓴 여성부터 머리만 가린 여성들까지 많은 여성이 기쁜 모습으로 투표소에 모였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여성도 있었다. 선거일은 온 국민의 축제일이었다. 국기를 단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오갔고 민주화의 상징인 트리폴리 순교자 광장에서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모여 국기를 흔들고 승리의 V자를 교환했다. 저녁에도 축하행사가 이어졌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 국민이 보여줬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번 선거가 이렇게 신속히, 별 탈 없이 치러질 것이라고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가 1월에야 구성되었고, 정당법 및 선거구 획정 등 투표를 위한 기본 규정도 제대로 없는 상태였다. 리비아 국민은 이번 선거를 잘 치러냄으로써 국제 사회에 뉴 리비아에 대한 기대를 해도 좋다는 저력을 보여준 것이다.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부지역 벵가지 등 일부 지역에서 인구 비례 의석 배분에 반대하는 인사들의 투표 저지 시도가 있었다. 제헌의회 의석은 인구 비례에 따라 인구가 많은 서부지역에 102석, 벵가지를 포함한 동부지역에 60석, 기타 지역 38석 등으로 되어 있는데, 동부지역 사람들이 의석을 인구 비례가 아니라 3개 지역에 동등하게 나누라고 주장한 것이다. 일부 동조 세력이 있기는 했지만 선거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강한 국민적 열망은 이런 위기를 넘어서게 했다.

이번 선거에선 무아마르 카다피의 통치 기간에 탄압을 받았던 무슬림형제단 계열 인사들의 입후보가 많았으나, 실제 득표에서는 내전 기간 중 과도정부 총리를 지낸 마흐무드 지브릴이 이끄는 자유주의 계열 정당(국민연합당) 소속 인사들이 약진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지브릴의 인지도가 큰 몫을 했다. 정당정치 경험이 전무한 리비아에서는 의원 200여 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 무려 130개 정당에서 3700여 명의 후보가 나왔다. 지브릴 말고는 이렇다할 정치스타가 없었다. 지브릴의 온건 중도적 정치성향,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 등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무슬림형제단에 대해 ‘국민을 가르치려 하고 고압적’이라고 거부반응을 가진 사람이 많다. 또 자유주의적 정권이 들어서야 여성의 권리가 향상될 것이라는 여성들의 기대감도 많이 반영됐다.

리비아는 제헌의회가 구성되면 현재 국가과도위원회는 해체되고, 30일 이내에 총리 선출과 내각 구성 완료, 헌법기초위원회 구성, 헌법 채택 국민투표 실시, 헌법 채택 180일 이내 총선 실시 등 숨 가쁜 정치 일정이 이어진다. 잘 진행되면 1년 정도 뒤에 정식 정부가 구성된다. 아직까지 치안 불안, 부족 갈등, 민병대 할거 등 내전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이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뉴 리비아는 시민혁명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단결력과 희생정신을 통해 난제들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보인다.

조대식 주리비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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