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면 주위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요즘 어디가 좋아?’다. 물론 휴가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평소 휴가를 어디로 갈지 챙길 여유는 없을 테고 당장 떠나자니 갈 곳이 군색한 건 당연지사. 그러니 당일치기 수험생의 심정으로 나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지면을 통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주고 이런 글로 걱정을 덜어주었다. 휴가계획만큼은 가장(家長)에게만 짐을 지우지 말라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정답은 아닌 듯하다. 휴가철에 임박해 부랴부랴 휴가계획을 세우는 우리 행태가 결코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아니라서다.
그러면 남들은 어떨까. 프랑스를 보자. 연말은 크리스마스와 신년파티(카운트다운으로 새해 맞기)로 들뜬다. 파티 의상과 친지 선물, 레스토랑 예약 등등. 그런데 해만 바뀌면 관심과 화제는 온통 여름휴가로 쏠린다. 그리고 여름이 닥치면 직장이고 사업이고 몽땅 접고 집을 나선다. 복닥대던 파리가 텅 빌 정도다. 이것이 ‘비우다’(바캉스)가 곧 ‘휴가’를 의미하게 된 프랑스의 휴가문화다.
그러면 ‘여행 동물(Travel Animal)’이라는―자타 공인으로 세상에서 여행을 가장 많이 하고 즐겨서―독일인은 어떤가. 이들은 더하다. 연간 휴가 일수를 보자. 프랑스가 한 달인 데 비해 독일인은 두 달이다. 의사도 그 두 달은 아예 진료실 문을 걸어 닫고 휴가를 떠날 정도다. 단언컨대 그들에게 휴가―여행―는 삶과 일, 곧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다. 휴가와 여행을 위해 돈도 벌고 일도 하고 또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쉬려고 해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휴가를 몰아 쓴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건 포기한다 치자. 그런데 날짜조차 내 맘대로 못 정한다. 업무가 휴식에, 조직이 개인에 우선하는 봉건적, 전체주의적 조직문화 탓이다. 점차 나아지고 있어 희망이 없지도 않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도 고칠 건 있다. 휴식에 대한 의식과 태도다. 휴가는 선물이 아니다. 근로자로서 당연히 챙겨야 할 권리다. ‘업무’란 월간지에 끼워진 ‘휴가’란 별책부록도, 군대의 포상휴가와 같은 맥락의 시혜(施惠)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왜 일을 하느냐에 대한 자각이다. 한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삶의 지수가 거의 꼴찌인 31위다.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357시간(2006년 기준)으로 가장 많다. 1년 365일 하루도 안 쉬고 매일 6시간씩 일하는 셈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비극적 수치에 함몰됐는지, 스스로 잘 안다. 더이상 이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려면 이것부터 깨달아야 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근본적인 목적이 지금 소속된 조직을 위해 일하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가(佛家)에선 말한다. 사람이 죽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데는 1억8000만 겁(劫)―1겁은 1000년마다 날아온 학이 날개로 쓸어내린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기까지 걸리는 긴 시간―이 걸린다고. 사람의 존귀함을 적시한 은유다. 그런 귀한 존재를 나 스스로 일의 노예로 만들 수는 없다. 휴식은 나 스스로가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하는 목적은 나를 위한 나의 휴식이어야 한다. 우리의 전근대적인 휴가문화 개선은 거기서 비롯돼야 한다. 나를 일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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