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승려의 일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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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의 의원이자 조계사 주지인 토진 스님이 5일 갑자기 사표를 냈다. ‘조계종 1번지’로 불리는 조계사는 조계종 총무원 직할 교구의 본사다. 그 전날 ‘불교닷컴’이라는 불교계 인터넷 언론은 토진 스님을 포함한 승려 8명이 지난달 23일 전남 장성의 백양사관광호텔에서 억대 도박판을 벌인 사실을 폭로했다. 현장을 몰래 찍은 동영상에는 이들이 한 방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며 도박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밤늦게 술과 안주도 배달돼 왔다. 이들이 도박을 한 날은 입적한 백양사 전 방장 지종 스님의 49재 전날이었다.

▷지난해 조계종이 내건 화두는 ‘자정과 쇄신’이었다. 불교계가 정치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불교 내부의 자정과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며 으뜸 과제로 불교 본연의 모습을 확립하는 수행(修行) 결사를 꼽았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웠던가. 조계종 총무원 코앞에 위치한 조계사의 주지와 부주지가 동시에 도박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파장이 컸는지 이번 사건으로 총무원 부·실장 6명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도박 그 자체보다 비밀리에 호텔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13시간에 걸쳐 도박판을 촬영한 과정을 더 문제 삼고 있다. 동영상을 검찰에 제공하고 도박 혐의로 고발한 성호 스님은 전부터 조계사 측과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분명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폭로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억대 도박은 승속을 떠나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부도덕한 일이다. 더구나 일반인보다 막중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스님들로서는 어떤 연유로 잘못이 드러났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야호선(野狐禪)’은 진실되게 참선도 하지 않으면서 깨달은 듯 남을 속이는 사람을 여우에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조계종이 선, 그중에서도 간화선을 위주로 하다 보니 스님이 득도(得道)한 것인지 아닌지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 스스로 득도했다고 주장하면서 무애(無애)의 경지에 들어간 듯 식육(食肉) 음주(飮酒) 도박 등을 거리낌 없이 하는 승려들이 존재한다. 계(戒) 율(律) 선(禪)은 같이 가는 것이다. 계와 율을 지키지 않는 선은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조계종#승려#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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