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제품 시장에 삼성그룹 계열 석유화학업체인 삼성토탈을 다섯 번째 공급사로 참여시키는 유가대책을 내놓았다. 삼성토탈은 그동안 생산량을 모두 수출해왔다. 이번 대책은 작년 4월 유가대책을 구체화한 것으로, 유통구조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유업계와 주유소가 가격을 내리도록 압박하는 내용 위주여서 인하 효과가 오래가지 못했다.
국내 유류의 생산과 유통은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개사가 50년간 과점하고 있다. 4개사의 경질유 시장점유율 합계는 지난해 97.7%를 차지했다. 전국 1만2000여 개 주유소 중 4개사의 간판을 달지 않고 독자적으로 영업하는 주유소는 6.5%뿐이다. 대부분의 주유소는 협상력이 약해 정유사가 정해주는 가격대로 기름을 받아간다. 반면 일본에서는 정유사로부터 석유를 공급받는 8곳의 원매(元賣)회사가 서로 주유소에 납품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기름값 인상이 쉽지 않다. 유류값 인하를 위해서는 가격 경쟁이 필수조건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말 국내에 처음 등장한 알뜰주유소는 석유공사 등이 대량으로 공동구매한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받아 일반주유소보다 L당 약 40원 싸게 팔고 있다. 올해 6월부터 삼성토탈이 석유공사에 휘발유 등을 공급하면 알뜰주유소를 확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삼성토탈이 일본에 수출하는 휘발유(매월 3만7000배럴)와 5월 이후 추가생산분(매월 8만8000배럴)을 합해도 기존 업체 한 곳의 1%도 안 된다.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연내 서울 25곳을 포함해 전국에 1000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달성하려면 저가 유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알뜰주유소에서 소비자들이 가격 인하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세부적인 정책이 강구돼야 한다.
이번 대책에는 석유 소비를 줄이는 방안이 미흡하다. 지난해 말부터 유가가 꾸준히 올라 보통휘발유 값이 L당 2000원을 넘었는데도 교통량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석 달 동안 고속도로의 하루 통행량은 368만 대로 1년 전의 344만 대에 비해 20만 대 이상 늘었다. 유가가 한꺼번에 폭등했던 과거 오일쇼크 때와 달리 유가가 서서히 올라 소비자들이 둔감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놓고 온도를 서서히 높이면 물이 뜨거워진 줄 모른다는 이치와 같다. 정부 당국은 유류의 소비절약과 관련해서도 면밀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