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성하]DMZ를 탈북의 통로로 만든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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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현재 북한의 가장 큰 체제 위험은 탈북이다. 4중 5중의 감시체제에서 쿠데타는 불가능하지만 굶어죽는 걸 피해 달아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탈북을 선뜻 못하는 이유는 중국에서 체포될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 1명이 한국 입국에 성공할 동안 5명이 북송됐다. 특히 최근에 북송된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은 전례 없이 가혹해졌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북-중 국경을 체제 보위의 최전선으로 간주하고 있다. 병력을 꾸준히 늘리고 양은 보잘것없지만 군량미와 피복도 국경경비대부터 공급한다.

그 대신 남쪽 최전방의 1, 2, 4, 5군단은 북에서 가장 힘없는 집 자식들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부대가 됐다. 특히 강원도 1, 5군단이 가장 심각하다. 군인들의 키가 160cm 안팎에 불과하고, 병력의 3분의 1이 영양실조인 현역 중대도 부지기수다. 군인들은 밥 한 끼에 영혼도 팔 만큼 굶주려 있다. 무게 48.7kg인 한국군 완전군장을 착용시키면 태반이 그 자리에 주저앉을 판이다. 배가 고파 탈영한 군인이 너무 많아 당국이 처벌을 포기했다고 한다.

미래는 더 암담하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조사 결과 북한 0∼9세 아동의 절반이 영양실조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는 30% 이상 급감했다. 1994년생이 올해 입대하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 북한군 입영 대상자가 매년 30%씩 줄어들게 된다. 머잖아 여성의무복무제라도 도입해야 할 판이다.

이런 속에서도 북한이 중국과의 국경 병력을 기를 쓰고 늘리는 것은 한국군의 북침 가능성보다 대량 탈북 가능성을 훨씬 더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형국이다.

이참에 북한이 아예 아랫돌을 뺄 수 없게 만들면 어떨까. 만약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굶주린 군인들이 무더기로 남쪽에 귀순한다면 북한으로선 더 이상의 재앙은 없을 것이다. 북한의 지금 형편으론 남과 북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꽁꽁 막는 건 불가능하다. 탈북을 막아야 할 신세대 군인들에겐 충성심도 기대하기 힘들다.

가령 DMZ에 수많은 귀순 통로를 만든다고 상상해 보자. 대전차 지뢰나 방해물, 철조망 등은 그대로 두되 일정 구간의 대인지뢰만 제거하는 것이다. 북한 군인들이 잘 볼 수 있게 ‘지뢰 없음’이라는 팻말도 크게 세운다. 안보상 불안은 첨단 무인 감시체계 등 한국의 앞선 군사력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 실시해 보고 득보다 실이 더 크면 통로를 다시 닫으면 그만이다.

북한군에겐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고 달러를 벌어 가족에게 보내줄 수 있는 생명의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자기가 지키는 지역을 통과해 남쪽으로 넘어 오면 중국에서처럼 북송될 위험도 없다. 행방불명된 탈영병이 워낙 많다 보니 몰래 오면 가족이 피해 볼 염려도 없다.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DMZ의 대인지뢰를 걷겠다면 아마 우리부터 난리가 날 것이다. 남북을 체험한 기자가 보기엔 북쪽은 허세만 남아 하늘을 찌르지만 남쪽은 실력에 비해 자신감이 바닥이다. 개방도가 세계 최상위권인 남쪽은 좌우로 10m씩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지만 가장 폐쇄된 북한은 1m만 흔들려도 버티지 못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DMZ의 대인지뢰를 걷을 경우 진짜 난리가 날 곳은 북한이다.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는 이런 것이 아닐까.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탈북#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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