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애매모호’가 새누리당의 정체성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7일 03시 00분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4·11총선에서 어느 당을 지지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당의 자료를 제출받아 정리한 ‘정책의제에 대한 정당별 기본입장’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외교 안보 경제 복지 등 5개 분야 15개 항목 가운데 무려 9개에 대해 ‘기타’라고 답했다. 찬반(贊反)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기타’는 사실상 ‘무정견(無定見)’을 뜻한다. 특히 새누리당이 국가안보와 생존전략에 대해서조차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은 것은 새누리당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한다.

새누리당이 ‘기타’로 답한 것 중에는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한미동맹이 우선시돼야 하느냐’는 항목이 있다. 새누리당은 이 항목과 관련해 ‘한미동맹은 우리나라의 안보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 ‘한중 관계의 발전 및 여타 지역과의 다변화한 실질적 협력관계도 주요 과제’라며 서로 엇갈리는 설명을 동시에 내놓았다. 두 의견에 각각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정책에는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다. ‘기타’라는 대답은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는 것으로 비친다. 반미세력의 눈치를 본다는 느낌마저 준다. 민주통합당이 이 항목에 대해 ‘찬성’이라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을 안보 면에서 지켜낸 초석이고, 경제적 번영도 그 바탕 위에서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對北) 경제지원을 북한의 핵문제나 인권문제와 연계시켜야 하는가’라는 문항에서도 새누리당은 ‘기타’라고 답했다.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원칙에 입각한 유연한 대북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역시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해 진행한다’며 ‘기타’라고 답했다.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퍼주기 식 대북 지원에 반대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올해 초부터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꾀한 새누리당에 복지 확대 등 좌(左)클릭 전략이 득표에 유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수를 꼴통으로 아는’ 젊은층을 붙잡겠다는 정치공학에 무조건 매몰돼 있는 것은 실망스럽다. 종북주의 세력이 한미동맹 해체, 미군 철수 같은 공약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현실에서 새누리당이 체제 수호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 세력은 새누리당이 너무 보수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본가치에 대한 신념이 약해 문제라는 우려를 갖고 있다. 원칙에 대한 타협은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사설#총선#새누리당#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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