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920억 달러(약 104조3280억 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나라, 지난해 주택 값이 평균 17% 급락한 나라, 14%를 웃도는 실업률에 구직을 위한 젊은이들의 해외 탈출이 이어지는 나라…. 아일랜드다.
그런데도 아일랜드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부자’ 국가들보다 더 열심히 개발도상국을 돕고 있다. 해외 원조를 돕는 비영리단체 다라(DARA)가 최근 주요 23개국의 해외 원조 지수를 분석한 결과 아일랜드는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에 이어 4위에 올랐다. 대가성을 띤 차관이나 긴급 구호기금이 아닌, 평소 국민의 원조 프로그램 참여도나 국가의 인도주의적 정책 등 원조의 ‘성숙도’를 종합한 지수여서 더욱 의미가 크다. 보고서를 작성한 필립 타밍가 연구원은 “아일랜드는 시민단체를 통한 기부와 프로그램이 활발하고 국가 예산에서 원조액을 책정할 때도 ‘긴급 구호금’ ‘회복 발전금’ 등으로 나눌 정도로 사려 깊다”며 “경제위기가 온 2009년 이후에도 이 같은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넉넉한 독일은 이번 보고서에서 12위에 올랐다. 2010년 기준 국민총소득(GNI) 대비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아일랜드는 0.53%인 반면 독일은 0.38%다. 또 아일랜드가 단기 지원이 아닌 빈곤을 줄이는 장기 프로젝트 등에 효율적으로 원조하고 있다는 보고서의 설명에서 새삼 ‘원조 강국’임을 느낀다. 아일랜드 엔다 케니 총리는 최근 “(우리 경제가 어려워도) ODA 규모를 GNI의 0.7%까지 올리겠다는 OECD 회원국으로서의 약속은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긴축정책을 펼치면서도 인도주의적 지원을 계속하는 아일랜드는 성숙한 국가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6일부터 서울에선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53개국 정상급 인사가 모인 거대한 회담이 열린다는 건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GNI 대비 ODA는 0.12%에 불과하다.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인도주의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아일랜드인들의 ‘나눔 DNA’에서 국제사회를 이끄는 더 성숙한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을 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