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로 추진되는 정부 정책이 때로는 원하지 않은 사회적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1980년대부터 일본형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소위 ‘가족화 정책’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소득이 부실한 여성들에게 세금과 연금에 혜택을 부여했는데, 이로 인해 여성들의 전업(full time) 경제사회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엉뚱한 결과를 불러왔다. 요즈음 영아(0∼2세)들에 대한 보육지원으로 인해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비슷한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금년부터 ‘0∼2세 전면 무상보육’ 제도가 도입되면서 고개도 못 가누는 갓난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젊은 부모들이 생겼다. 집에서 멀쩡하게 잘 키우던 가족들까지 모두 달려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지금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보육지원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보내고 싶어도 남은 자리가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보육시설이 가장 필요한 맞벌이 가정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 대안으로 양육수당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하나 이 또한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양육수당을 전체적으로 확대하기보다 직접 양육하는 부모들이 필요한 지원을 함께 포함하는 정책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영아들은 부모가 직접 양육하라고 권장한다. 아이와 양육자 간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인격이 형성되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우리나라 영아들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장기준(30% 미만)을 훨씬 넘어섰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가급적 가정 양육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2주 출산휴가 낸 영국총리
가정 양육을 늘리려면 우선 일하는 부모들의 출산휴직과 육아휴직, 그리고 단축근로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집행되도록 독려해야 한다. 아빠들도 자녀 양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우자 출산휴가를 의무화하고 육아 휴직 할당제 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10년 부인이 넷째 아이를 낳은 후 2주간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가졌다. 10년 먼저 재임 중에 넷째 아이를 출산한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가 논란 끝에 별장에서 2주간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업무를 보는 휴가근무제를 택했던 것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의 모범국인 노르웨이에서는 아빠가 신청할 경우 엄마의 정규 육아 휴직 외에 12주를 추가로 휴직할 수 있다.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가고 있다. 지난해 말 개정된 법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자들은 8월부터 배우자가 출산하면 3일 이상 5일까지 유급휴가를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점차 확대하고 아빠들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할당제 도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처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안전한 육아에 대한 불안감에 더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외출까지도 마음대로 못하는 육아 부담과 고립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가정 양육 부모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도록 아이돌보미사업을 다양화하고 공동육아나눔터 설치도 필요하다.
육아 경험이 있으면서 80시간 훈련을 받고 가정으로 파견되는 ‘아이돌보미’들은 사용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아이가 둘 이상일 때 시간제 돌보미를 파견해 주는 지자체도 있다. 부모들은 이 시간에 장을 보거나 필요한 경우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을 병원에 데리고 가기도 하며, 육아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 이런 지원이 있었다면 둘째 낳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하는 엄마도 있다. 가정 양육을 하는 모든 부모가 이러한 혜택을 받도록 사업이 확대돼야 한다. 이웃이 함께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공동육아나눔터’를 활성화한다면 지역사회공동체문화를 되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부모와 아이 중심으로 접근해야
가정 양육 지원을 위한 법과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자녀양육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건강가정기본법’은 포괄적인 내용에 그치고 있다. 양육수당의 근거가 되는 ‘영유아보육법’은 보육시설 설치와 관리에 관한 내용이 주이며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 대한 지원책으로 양육수당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자녀양육에 필요한 정책과 사업이 연계되고 양육수당은 그 수단의 하나로 포함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제 우리도 아이 키우는 일이 온 국민이 나서서 중지를 모아야 하는 나랏일이 됐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행복과 안정, 그리고 부모의 생활여건에 부합하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육 지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와 아이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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