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수진]MB가 점찍은 그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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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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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정치부 차장
조수진 정치부 차장
이명박 대통령은 1월 2일 국정연설에서 잇따라 터진 친·인척, 측근들의 비리·부패 의혹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저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고,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8일 뒤 나온 대통령실 인사를 보면 그런 다짐이 진심이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 인사에서 임명된 권익환 대통령민정2비서관은 그 직전까지 검사로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장으로 활동했다. 합수단은 영업정지 된 7개 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발족했다. 검찰을 주축으로 금융감독원, 국세청, 예금보험공사 등 유관기관이 참여해 3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KT&G 복지재단 이사장을 구속기소했다.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퇴출을 막아 달라”는 청탁과 함께 4억 원을 받았다는 게 혐의였다. 유 회장이 2008년 이 대통령의 손위 동서인 황태섭 씨를 고문으로 위촉하고 매달 1000만 원씩 수억 원의 고문료를 지급해온 사실도 밝혀냈다. 유 회장이 제일저축은행의 영업정지를 막아보려고 전방위 로비를 벌인 점에 비춰볼 때 황 씨의 역할은 많은 궁금증을 낳았다. 그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김 이사장에 대해선 아직 1심 재판이 열리지도 않아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마당에 합동수사단장을 느닷없이 민정2비서관에 임명한 걸 예사롭게 볼 것인가. 그 자리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는 ‘청와대 고위층 비위 종합상황반 반장’을 겸하고 있다.

그러니 인사에 담긴 속뜻은 “친·인척 비리를 샅샅이 파헤치라”는 게 아니라, 혹시 “친·인척 비리가 더는 드러나지 않도록 막으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세간에 나돌아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사는 인사권자 마음이라지만 1800명이 넘는 검찰조직에서 권 비서관이 아니라면 민정2비서관을 맡길 적임자가 그렇게도 없는 것일까. 문제는 얼마 전까지 권 비서관의 지휘를 받던 수사팀이 그의 눈치를 보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권 비서관은 대구·경북(TK) 출신이어서 동향인 이 대통령과 비리·부패 의혹을 받고 있는 친·인척들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누가 봐도 뒷말이 나올 게 불 보듯 뻔한 인사다. 그럼에도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나 한상대 검찰총장이 청와대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얘기는 과문한 탓인지 듣지 못했다. 권 비서관이 고사했다는 얘기 역시 들리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인사에 잡음이 많은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번에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책임자를 청와대에 불러다 앉힌 것은 그 동기가 미심쩍은 꼼수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이런 인사가 무리수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입 한 번 뻥긋 못하는 검찰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입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면서 정작 권력 앞에선 작아지는 검찰을 신뢰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말년에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건 제대한 병장도 안다. ‘참외밭에선 신을 고쳐 신지 말고 배나무 아래에선 갓을 고쳐 쓰지 말라(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고 했다. 청와대와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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