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우열]여야 의정보고서에 黨名이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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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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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열 정치부 기자
최우열 정치부 기자
서울의 한나라당 A 의원은 최근 만든 의정보고서에서 한나라당 로고를 뺐다. ‘한나라당’이라는 문구도 뒷면에 있는 자신의 약력에 살짝 걸쳤을 뿐이다. A 의원은 “(당 로고를 빼는 게) 임시방편일 수도 있지만 인물과 실적을 강조하는 하나의 홍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난해 가을에 겪은 ‘봉변’을 털어놓았다.

“지하철역 앞에서 한 청년에게 의정보고서를 건넸는데, 그 청년이 ‘한나라당이네?’ 하면서 그 자리에서 종이를 찢어버립디다. 이런 일을 실제 당해보지 않으면 그 모멸감과 수치스러움이 어떤지 잘 모를 겁니다.”

A 의원처럼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의정보고서에서 소속 정당 명칭과 로고가 사라지는 ‘정당 실종’ 현상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서울 강서갑의 구상찬 의원은 의정보고서 표지에 ‘제가 먼저 매를 맞겠습니다’라는 문구 아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사진을 실었다. 한나라당 로고를 빼고 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대신 주황색 톤의 테두리를 둘렀다.

한나라당 강세지역인 서울 서초갑의 이혜훈 의원은 자신이 표지 모델로 등장한 여성패션잡지 형식의 의정보고서를 만들면서 로고나 문구 등에서 한나라당 색깔을 배제했다. 비례대표인 원희목 의원도 표지에 ‘국회의원 원희목 2011 의정보고서’라고 썼을 뿐 당명이나 로고를 부각시키지 않고 황금 빛깔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통합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 안양 동안갑 이석현 의원은 의정보고서에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안양의 가치를 두 배로’라고 지역 현안을 강조한 반면 당명은 담지 않았다. 제주 서귀포의 김재윤 의원도 표지에 ‘제주도의 꿈 김재윤’이라는 제목과 인사말이 있을 뿐 당명은 내세우지 않았다. 예외라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의원들. 이들은 의정보고서에 정당명을 숨기지 않았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의정보고서의 ‘정당 실종’ 현상은 최근 불어닥친 정당정치의 위기를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정당정치 위기의 첫 번째 버전이 ‘안철수 바람’과 무소속 서울시장의 당선이고, 두 번째가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들의 ‘자기 정당 부정’ 현상”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속한 정당이 그렇게도 부끄럽다면 탈당이라도 해야 옳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 총선에선 다시 공천을 요구하는 이들의 처신이야말로 정치권의 위기를 가져온 근원이 아니었는지 자문(自問)해야 할 것 같다.

최우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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