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성공한 대통령은 현명한 국민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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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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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선거의 해다. 4월 총선 결과는 12월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더욱이 올해 선거는 유럽발(發) 금융위기, 재스민 혁명 이후 중동 정세의 불안,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체제의 불안정성 등 경제와 안보 상황이 너무나 불확실해 섣불리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 선거는 노무현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선거 판도가 일순간에 뒤바뀐 것처럼 돌발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실종된 정치 복원하는 선거로

작년은 정치가 실종되면서 정치권이 붕괴된 해였다. 정치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갈등을 조정하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채 절망과 고통만을 안기고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켰다. 기존 정당들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안철수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박근혜 대세론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정치 부재 속에서 시민단체가 기존 정당을 접수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속세에서 벗어나야 할 스님이 선거 전략가로 둔갑하고, 연예인이 사회 쟁점을 주도하며, 현직 판사가 대통령을 조롱하고, 정치인들이 ‘나꼼수’에 머리를 숙이는 상황까지 왔다. 이 모든 것이 정치가 망가지고 잘못됐기 때문이다.

올해 선거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춧돌 선거임과 동시에 실종된 정치를 복원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부여된 중대한 선거다. 최근 한국 선거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선(最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뽑는 선거가 자주 등장하고 스스로 폐족(廢族)이라고 자처했던 국정 실패세력들이 어느새 개혁의 아이콘으로 변신해 선거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은 스스로 뽑은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는 섬뜩한 말을 거침없이 하고, 공공연히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민 가겠다”고도 한다.

우리 국민이 특정 정치인에 대해 보이는 열광과 환멸의 주기가 지극히 짧은 것도 문제지만 유권자들이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혀 감성적인 충동 투표를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들이다. 여기에 행정수도 이전, 신공항 건설과 같이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대형 국책사업 시행을 둘러싸고 선거 후 정치 갈등이 심화돼 대선을 한번 치르고 나면 나라가 두 동강 난다. 야당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 행동한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승리 세력을 무너뜨리려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치중한다. 여당은 계파 싸움만 하고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무기력한 정당으로 전락해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공멸의 정치에 빠져든다.

증오와 분노로는 세상 못 바꾼다

올해 양대 선거에서는 이런 파탄과 공멸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유권자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토대는 선거 과정 속에서 만들어져야 하고, 현명한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정치를 바로 세우고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유권자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후보들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책 경쟁을 하도록 국민이 압박해야 한다.

증오와 분노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정당들이 목숨을 걸고 지킬 가치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명확하게 제시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책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작년 말에 코리아컨설팅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35.5%)를 우리가 앞으로 지향할 가치로 가장 많이 지지했다.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복지가 잘 이뤄지는 사회’(19.3%), ‘자율과 경쟁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지는 사회’(15.1%)보다 훨씬 높았다. 정치권은 이런 국민의 욕구를 직시해야 한다. 정당들이 이념적 프레임에 빠져 국민이 진정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고 선거에 임한다면 국민이 주인인 선거가 자리 잡을 수 없다.

보편적 복지와 평등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스웨덴의 경우 의무투표제를 실시하지 않지만 투표율이 80%를 웃돈다. 다당(多黨)체제에서 각 정당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감성적인 충동 투표가 설 땅이 없다. 한나라당은 쇄신을, 민주당은 통합을 외치며 새로운 정치를 약속하고 있다. 한국 선거에서 쇄신과 개혁에 대한 대(對)국민 약속이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그동안 선거 과정에서 정치권이 약속했던 개혁의 100분의 1만 실천했더라도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대화와 타협, 상생과 합의가 살아 숨쉬는 선진 정치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쇄신과 민주당의 통합이 과연 겉과 속이 같은지,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평가해 투표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joon57@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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