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에 언론자유 없음을 스스로 폭로한 이종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미국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북한 관리들이 한국 기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 이들은 보도에 불만을 표시하며 정당한 취재활동을 하던 남한 기자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이종혁 조선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앞으로 남북이 공동사업을 할 때 연합뉴스는 북한에서 취재할 수 없도록 취재단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북한에 대해 “노동당이 모든 언론을 소유 통제하고 있다”며 올해로 8년째 세계 최악의 언론탄압국으로 지목했다.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자랄 수 없다. TV를 틀면 김정일에 대한 충성 맹세만 나오고 신문도 똑같은 거짓말만 찍어내는 이단(異端)의 세상이 북한이다. 거기에는 진정한 자유언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국제사회를 상대하는 역할을 맡은 관리라면 언론자유를 포함한 선진 민주체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더구나 이종혁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남한 언론과 접촉하며 자유민주주의 언론의 면모를 관찰했을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 기자들에게 행패를 부린 것은 의도적으로 보인다.

북한 측은 이종혁이 연합뉴스 기자에게 행패를 부리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디오로 촬영했다. 이종혁은 북한에 불리한 기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귀국할 경우 상층부로부터 문책당할 것이 두려워 그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 북한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고위 관리들이 외국에 나와서 저럴 정도니 북한 주민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서야 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언론인이란 사람들은 정권의 지휘에 따라 나팔을 부는 ‘보도일꾼’일 뿐이다. 이른바 언론기관은 노동당 선전기구의 하부조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남한의 일부 언론인은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남북 언론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남쪽 언론인들의 활동이 그나마 의미가 있으려면 북쪽 상대들에게 언론자유를 위한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우리 언론은 이종혁이 보인 것과 같은 행패에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언론자유에 상응하는 치열한 취재와 진실 보도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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