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유병규]미국 일자리 논쟁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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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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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SAIS 초빙연구원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SAIS 초빙연구원
세계 전반에 또 다른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가운데 미국 경제의 최대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깊은 경기 침체 국면에 빠져 있는 미국의 실업률은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의 구직난도 심각해 미국 유수의 대학을 나와도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국민 10명 중 4명이 미국 정치 경제 현안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은 것이 일자리 부족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고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9월 초 정치적 운명을 걸고 ‘오바마 일자리 계획’을 의회에서 발표하고 인준을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금 감면, 도로와 학교 개선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 장기 실업자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을 포함하는 4470억 달러 규모의 실업대책을 내놓았다. 당초 예상했던 3000억 달러보다 훨씬 많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재정 지출 계획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장의 반응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주가는 여전히 떨어지고 야당인 공화당과 일자리 확대 방안에 대한 설전은 확대되고 여론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오바마 일자리 대책이 일시적으로는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근본대책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오바마 실업대책 재정에만 의존

오바마 대통령의 일자리 계획을 둘러싼 미국 정치경제계의 논란은 한국의 일자리 창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일자리를 만들고 늘려 나가는 주체는 바로 기업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도로 공사 등에 막대한 재정 지출을 하면 공공부문 건설근로자들의 일자리가 당장은 생기겠지만 이를 계속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불과 2년 전인 2009년에도 금융위기에 대응해 8000억 달러가 넘는 재정 투자를 했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고 비판론자들은 지적한다. 지속 가능하고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의 성장 지향적인 투자 증대와 창조적 활동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 같은 핵심적인 고용 증대 원리를 반영해 세계에서 기업 환경이 가장 좋다는 미국에서조차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며 ‘정부 통제는 더욱 엄격히, 기업 활동은 더욱 자유롭게’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둘째, 일자리 창출 방안은 당면한 구조적 경제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정책과 연계돼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일자리가 줄고 있는 것은 장기 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이겠지만 근원적인 문제점은 글로벌 경제 시대에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 상실된 데 있다. 그동안 고학력층이 취업하기 유리한 금융 같은 서비스업과 고부가가치 첨단산업 중심의 산업 구조로 전환되면서 서민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려면 미국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장기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에너지 자원 개발 확대와 같은 새로운 고용 창출 영역을 만드는 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일자리 계획에는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국가 산업 혁신 전략’이 결여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의 일자리 창출 방안도 정부 지원 등을 통해 단순히 일자리 몇 개 늘리는 데 치중해서는 안 된다. 갈수록 생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 국내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총체적 산업 전략과 연계해 구상해야 한다.

셋째, 정치적 고려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연일 의회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논란을 벌이는 ‘정치게임’을 중단하고 일자리 창출 예산을 바로 인준해 실업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제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의식하여 의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오바마 일자리 계획이 막대한 재정 적자에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로 늘어난 것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서민 대중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 당장 고용효과가 나타날 것을 알면서도 극구 반대하는 공화당은 정부 지출 확대를 원치 않는 보수 세력인 ‘티파티’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양당의 논쟁을 통한 절충안이 언젠가는 의회를 통과하겠지만 그만큼 나라 경제와 근로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질좋은 일자리는 기업 통해 나와

한국 경제의 앞날을 놓고 정치권에서 벌이는 분배와 복지 논쟁 역시 국가 경제의 백년대계보다는 정치적인 당리당략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솔직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스펜스는 미국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루한 정치적 이념이나 과거 통설은 잊어버리고 세계경제 환경 변화에 대응한 보다 창조적이고 유연하며 실용적인 대안들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SAIS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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