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두 차례의 전란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이 중 병자호란은 외교를 잘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17세기 초 중국 대륙에서는 명나라가 기울고 청나라가 일어나고 있었다. 파워 이동을 간파한 임금 광해군은 중도 외교를 펼쳤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명나라를 숭상하는 세력의 힘으로 집권한 인조는 청나라를 오랑캐라 무시했다. 결국 청나라는 병자호란을 일으켰고 인조는 삼전도의 치욕을 치렀다.
폴 케네디는 자신의 책 ‘제국의 흥망’에서 역사 속 세계를 호령하던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연구했다. 그는 강대국이 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국가의 생산력이고, 망하게 하는 것도 생산력이라 말한다. 군사력과 외교력도 생산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몰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에 일어난 미국과 관련된 사건들을 보면 미국이 정말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시작하여 국력을 과도하게 소모했다. 요술방망이 같던 월가의 금융시스템도 탐욕의 노예가 돼 국력을 심하게 갉아먹었다. 얼마 전에는 국가 부도를 걱정하는 상황까지 가더니 결국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일까지 당했다. 역사 속의 강대국 몰락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먼 나라 잘 사귀어 중국 견제하기
물론 아직도 미국의 저력은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사회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미국이다. 따라서 지금도 전 세계의 우수 인력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를 원하고, 미국에 가서 능력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 미국인들은 편한 삶에 길들여져 있다. 힘든 노동을 요하는 제조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매어 긴축 재정으로 국가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과거에는 미국이 세계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세계가 미국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슈퍼파워 미국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까. 많은 사람이 전망하듯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유럽 일본 인도 러시아 등이 주위에 포진하는 ‘양강 다극 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혁명적인 변화다. 미국 체제에 적응돼 있던 각국은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위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격변 속에 우리 한국에는 어떠한 기회가 있을 수 있고 어떤 전략이 가능할까.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국의 부상이다. 과거 역사 속의 상황이 다시 연출되는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힘의 논리를 철저하게 경험했고, 그 인식하에 국가를 운영했다. 인접한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선린(善隣)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어려울 때 도와주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파병이 한 예다. 역사는 중국 대륙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북한이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점하던 위치를 북한이 차지하고 있다. 북한은 조선시대보다 더 중국에 기대고 있다. 중국은 두 개의 한국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봤듯이 중국은 우리 편이 아니다. 특히 우리가 겪는 국제 문제의 대부분이 북한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외교를 전개해야 할 것인가.
원교근공(遠交近攻). 멀리 있는 적은 사귀고 가까운 적은 공격한다. 가까운 적을 견제하기 위하여 먼 나라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만든 전략이다. 나는 미국 이후의 시대에는 원교근공의 전략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과 북한은 한통속이다. 중국은 절대 우리의 우방이 될 수 없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먼 나라를 잘 사귀어야 한다.
중국과 선린관계 유지도 중요
그렇다고 해서 병자호란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떠오르는 중국의 파워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최대 무역국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중국과 선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과 우방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중국에 맞서서 목소리를 낼 만한 나라를 우방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러시아 인도 일본 등이 그런 나라들이 될 것이다. 이것이 원교근공 전략이다.
역사를 배우다 보면 큰 나라 중국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주권을 유지해온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앞으로 20∼30년 동안 전개될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한 차원 높은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이광형 객원논설위원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 겸 과학저널리즘 책임교수 khl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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