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년 예산안, 포퓰리즘 거품 걷어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정부가 마련한 내년 예산안 초안의 규모는 올해보다 7.6% 늘어난 332조6000억 원이다. 각 부처의 요구액 가운데 불요불급한 지출을 뺀 것임에도 증가율이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4.5%를 웃돈다. 미국이 재정적자를 줄이지 못해 70년 만에 처음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유지가 화급해진 비상시기를 맞아 우리도 내년 예산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정치권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빠져 정부 지출을 전제로 한 선심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값 등록금’으로 시끄러운 판국에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무상보육까지 꺼내 혼란을 키웠다. 한나라당은 10조 원 규모의 민생예산 추가편성을 정부에 요구했다. 민주당은 ‘3+1’ 무상복지 시리즈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여야 모두 나라 살림을 거덜 내려고 작심한 듯하다. 방한 중인 그리스 아테네대의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교수는 “1970년대 고속성장을 거쳐 민주화를 이룬 뒤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드는 모양새가 한국과 그리스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의 비효율 복지 경쟁으로 파멸한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그의 고언을 정치권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제 2013년 중반까지 제로(0)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선언은 경기회복이 그만큼 어려우며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미국 의회의 12인 특위는 11월 3일까지 향후 10년간 정부 지출 1조5000억 달러 삭감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사회보장 등 복지정책예산도 삭감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은 당분간 글로벌 재정위기의 탈출이 어렵다는 전제 아래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예산 거품을 걷어내고 불요불급한 예산을 과감하게 깎아야만 위기를 차단할 수 있다.

군사 외교 분야의 안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정 안보도 튼튼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했던 저축은행 피해자 추가보상 방안처럼 걸핏하면 나라 곳간의 문을 열려는 시도를 막아낼 책무가 있다. 비효율적인 지출을 용인하는 정부의 각종 서민정책도 과감한 구조조정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 대통령은 ‘예산 10% 절감’을 약속했지만 지금껏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국회의 ‘끼워 넣기 예산’에서부터 연말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보도블록 교체 공사에 이르기까지 숱한 예산 낭비를 줄이는 일을 임기 마지막 날까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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