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중훈]호우 피해에 강한 도시 만들려면

  • Array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중훈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
김중훈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
얼마 전 폭우로 서울의 곳곳이 물에 잠겼다. 작년 9월에 이어 지난달 말에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침수 피해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최근 수해는 인재(人災)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변화된 강우 형태에 있다는 것이 많은 관련 전문가의 주장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천재(天災)라는 의견이다. 근래 들어 기존의 설계 한도를 초과하는 호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이것이 침수 피해의 직접적이고 가장 큰 원인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기후변화의 진행은 최근의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치수능력 키워야

애초 서울에 본격적으로 하수도 시설이 구축되면서 당시 한국의 경제능력, 초기 설비 비용, 침수 시 피해 등을 고려한 지침이 마련되었다. 지선관거는 5년, 간선관거는 10년 빈도의 확률을 바탕으로 설계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당시와 비교하여 현재 한국의 경제력은 현저히 높아져 2010년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 대비 80배 이상 증가한 2만 달러를 넘어섰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다. 시민들은 더 높은 수준의 치수 및 방재능력을 요구하고, 국가는 그것을 충족시킬 충분한 역량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근 발표된 서울시의 대책은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는 현재 10년 빈도를 바탕으로 한 하수관거 수용능력을 50년 빈도, 즉 시간당 100mm 강우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증설하기 위해 연간 5000억 원씩 10년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서울시 전체 수방예산의 5배에 가까운 금액을 매년 지출하는 것으로 현재 한국의 경제능력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나아가 지하저류조와 대심도터널 등의 장기적인 계획까지 포함하면 17조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행정부의 의지만으로 이러한 대공사를 꾸준히 진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간이 지나면 침수 피해의 기억은 금방 잊혀지고, 수년간 비 피해가 없으면 곧바로 세금을 낭비하는 것으로 여기기 쉬운 것이 치수사업이기 때문이다. 행정기관과 정치권, 사회단체, 시민 모두가 장기간에 걸쳐 도시의 방재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방재R&D 예산도 증액 필요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구조적인 측면, 즉 인프라로서의 측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더 큰 그림에서의 방재성능 향상이 필요하다. 한국의 방재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은 전체 R&D 예산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재해 관련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해 현재 국립방재연구소의 연구인력은 22명으로 유사전문기관인 건설기술연구원(417명) 지질자원연구원(436명) 환경산업기술원(134명) 등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다. 게다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는 침수나 방재 관련 전문연구원이 아예 없는 실정이다. 방재 분야 R&D 투자를 늘리고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은 방재 대응 기술자 확보의 필수조건이다.

다만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방재예산을 무한정 늘릴 수만은 없으므로 막대한 추가 예산을 들여 완벽에 가까운 재해 예방을 추구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비용을 절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로 자연재해의 규모는 매년 커져가고 있다. 단발성 이슈가 아닌 방재에 대한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구조적 또는 비구조적 재해 대응능력의 향상으로 재해에 강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김중훈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