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레이디 가가의 립스틱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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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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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편집국
최영훈 편집국
최근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를 2박 3일간 둘러봤다. 3·11 대지진 피해를 위로하고 한일 간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한국관광협회중앙회(회장 남상만)가 마련한 여정이었다.

첫날인 23일 오전 도쿄 하늘엔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2년 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는 하늘도 푸르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활기찼다. ‘일본 열도를 강타한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인가.’ 지레 짐작을 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니 오가는 행인도 드물고 거리 풍경도 왠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이런 선입견을 미조하타 히로시(溝畑宏) 관광청 장관은 한 방에 날려버렸다. 그의 왼쪽 뺨에는 입술 반쪽 크기의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남 회장을 비롯한 관광교류단 일행과 수인사를 나눈 뒤 그는 “조금 전 (일본관광) 홍보대사를 자처한 레이디 가가가 남긴 입술 자국”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방한 횟수만 78번이나 되는 엘리트 지한파 관료다.

이어 한국 해외전문여행사 20여 곳 대표도 참석한 공식행사가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이때도 그는 뺨의 붉은 자국을 지우지 않고 나왔다. 짧지 않은 연설의 대부분을 한국과의 인연, 한국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할애했다. 연설 말미엔 애국가 1절을 서툰 발음으로 완창해 한국 교류단 및 여행사 대표들의 뜨거운 박수를 끌어내기도 했다.

대지진이 남긴 상처를 딛고 일본은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었다. 신주쿠의 활기 넘치는 밤 풍경은 2년 전과 똑같았다. 원전 사고의 여파인지 도쿄 야경의 상징인 레인보 다리의 불빛만 조금 어두웠다. 일본에서 만난 관광공무원과 민간단체 사람들은 하나같이 “보고 느낀 대로 (일본이) 안전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려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한국 교류단은 24일 요코하마 시청사를 방문했다. 청사로 들어서자 수백 명의 직원이 나란히 서서 뜨거운 박수로 맞았다. 세일즈맨으로 잔뼈가 굵은 하야시 후미코(林文子) 시장의 아이디어였다. 세계적인 기업 도시바의 니시다 아쓰토시(西田厚聰·일본관광진흥협회장) 회장은 이날 만찬장에서 “어려울 때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맙다”며 막걸리 잔을 들어 올렸다.

관광의 핵심은 감동이다. 감동을 주는 것은 유적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고 서비스다. 짧은 방일 기간 중 1789년에 문을 연 소바(메밀국수)집을 비롯해 유서 깊은 식당 네 곳과 과자가게 한 곳을 들렀다. 다섯 곳의 역사만 더해도 1000년이 넘는다. 이 밖에도 일본에는 나그네를 감동하게 만드는 관광 인프라가 많다. 아직 우리가 배우고 체험할 것들이 널려 있다.

무역도 그렇지만 관광도 상호적인 것이다.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오고 가선 안 된다. 바다 건너 이웃한 나라끼리는 더욱 그렇다. 5월부터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늘고 있지만 대지진 이전의 절반 수준이다. 남 회장은 “관광교류 초기엔 일본이 은혜를 베풀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관광교류 증진의 마중물을 붓는 심정으로 일본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교류단원들은 마음이 따뜻한 니시다 회장과 외유내강의 하야시 시장, 몸을 던지는 미조하타 장관에게도 깊이 감동했다. 니시다 회장이 건배를 하는 순간 창 바깥으로 도쿄타워의 불이 들어왔다. 그 너머엔 구름을 뚫고 저 멀리 후지산이 솟아 있었다. 100km쯤 떨어진 후지산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고 했다. 검게 물든 후지산을 보면서 일본의 저력을 실감했다.

남 회장은 니시다 회장에게 10월 방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일 관광의 민간가교가 더욱 튼실해지길 기대한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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