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전 사고에 사소한 것은 없다

  • 동아일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가동을 당분간 중단하고 정밀 안전진단을 받기로 했다. 한수원 측은 어제 “고리 1호기를 정지한 상태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보다 심도 있고 정밀한 점검을 받겠다”면서 “안전성이 확인되면 정부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승인을 거쳐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12일 차단기 고장 등으로 고리 1호기의 가동이 중단되고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만큼 당연한 조치다. 부산지방변호사회는 고리 1호기의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을 부산지법에 내놓고 있다.

국내 원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채운 2007년에 KINS의 검증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10년간 계속운전이 결정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우리 정부가 실시한 국내 원전 안전점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고리 1호기에 몇 가지 안전설계상 문제점이 있지만 원자로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이번 정밀 안전점검을 통해 지진과 쓰나미, 전력 단절 및 화재 등 중대 사고에 대비한 비상대응 매뉴얼을 철저히 점검해 안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원전의 안전성과 계속운전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설계수명을 넘긴 원전의 계속운전은 독일을 제외한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러시아 등 대다수 나라가 시행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고리 1호기보다 오래된 모델인데도 설계수명(40년)은 고리 1호기(30년)보다 10년 더 길었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설계수명을 넘겨 운영한 것과는 관련이 없고 초대형 쓰나미로 인해 비상 발전기가 침수한 것이 원인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원전에 대한 세계인의 불안감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고장과 안전사고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부주의와 경미한 고장도 대형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과학적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인식과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 불안감을 해소할 책무 역시 원전 사업자의 몫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철저한 안전진단과 함께 자연재해나 테러공격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야 한다. 고리 1호기에 대한 의구심이 불식돼야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추가 건설 및 계속운전 정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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