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가축 347만 마리 죽이고 봄 되니 끝난 구제역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지난해 11월 하순 시작된 구제역(口蹄疫) 파동이 넉 달 만에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구제역 발생 116일째인 어제 “구제역에 대한 안정적 통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11개 시도, 75개 시군에서 발생해 돼지 331만 마리와 소 15만 마리 등 347만 마리 이상의 가축을 도살처분 및 매몰한 뒤 따뜻한 봄이 돼서야 사실상 종식된 셈이다.

보상비 방역비 매몰비를 포함한 국고(國庫) 지원액만도 2조8000억 원을 넘었다. 대규모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 등 2차 피해 우려도 가시지 않는다. 지방공무원 군인 경찰 소방관 민간인 등 모두 197만 명이 ‘구제역과의 전쟁’에 투입됐고 공무원 8명이 방역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50년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최악의 구제역”이라고 밝혔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정치권, 축산농가 모두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축산농민들은 ‘공장식 사육’으로 가축전염병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었고 구제역 발생 국가를 여행한 뒤 제대로 신고도 하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구제역이 발생한 뒤 확산을 막기 위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백신 접종 대신 매몰 처분을 고집해 피해를 키웠다. 구제역 전염 예방책을 강화하는 내용의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이 지난해 6월 국회에 발의됐는데도 정쟁으로 처리를 미뤘던 정치권도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지만 반성하는 정치인은 보기 어렵다.

정부는 앞으로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는 즉시 위기경보 최고단계인 ‘심각’에 준하는 방역조치를 시행하고 각종 차량의 이동을 통제하기로 했다. 공항과 항만의 검역시스템을 강화하고, 내년부터 축산업 허가제를 시행하는 내용도 대책에 포함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대규모 가축질병을 줄이려면 전염병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 밀집 사육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매몰처분 가축에 대한 100% 시가 보상 제도가 축산농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무사안일을 부추겼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농민의 책임감을 높이는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 자기 책임이 없으면 도덕적 해이가 커진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거취도 신속히 매듭짓는 것이 ‘책임행정 원칙’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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