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지영]‘블랙스완’을 통해 본 나의 발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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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내가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서 추게 된 것은 지금부터 딱 10년 전인 2001년이었다. ‘백조의 호수’는 발레리나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으로 여겨지는 발레이기 때문에 내가 이 작품을 드디어 출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더욱 설렜고 흥분되기까지 했다. 마치 영화 ‘블랙스완’의 니나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내 실력과 경험으로서는 충분히 무대에서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던 공연이었으나 그것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나의 이미지는 흑조에 더 어울리는 강하고 스피드 있으며 테크닉이 뛰어난 무용수였다. 자연스레 작품을 지도하시던 조안무가 선생님도 나에게 흑조보다는 백조 연습을 더 시키셨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나에게 제일 큰 문제점은 백조의 날갯짓이었다. ‘백조의 호수’는 다른 발레작품과 달리 포르드브라(팔 동작)에다 일반 클래식 발레에 나오는 동작들과는 달리 백조의 날갯짓이 추가되었다. ‘백조의 호수’를 추는 발레리나들에게는 그 날갯짓에 작품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고 얘기될 정도로 높은 표현력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흑조에도 물론 백조의 날갯짓이 있긴 하지만 백조 연기에 이미 그 기본이 들어가 있으니 백조에 더욱더 중점을 두어 공연 준비를 했었다.

발레리나의 관문 ‘백조의 호수’

하지만 주변에서 얘기했듯 나 스스로도 백조 때보다 흑조에 나오는 테크닉들이 오히려 춤추기에 편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공연을 했을 때 사람들에게서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내가 연기했던 백조와 흑조 중에 예상과는 달리 백조 연기에 더 호평을 했던 것이다. 마치 니나가 자신 있어 하던 백조 연기에서는 큰 실수를 하고 흑조에서 자신 안의 또 다른 내면을 발견해 큰 성공을 이끈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내게 돌아온 혹평은 흑조에 대한 연기력이었다. 흑조에 나오는 수많은 화려한 테크닉에 가려 그 안에 숨겨진 섬세한 감정 표현들을 간과했었던 듯싶다. 당시에 왜 내가 그런 감정들을 전혀 생각 안 하고 했을까. 물론 생각하고 또 알고도 있었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그 섬세한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에는 덜 여물지 않았을까.

‘백조의 호수’가 초연됐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 명의 발레리나가 두 가지 역할을 하지 않았다. 두 명의 발레리나가 한 명은 백조를, 다른 한 명은 흑조를 맡아 연기를 했었다. 그러다 이탈리아 발레리나인 피에리나 레냐니가 오데트와 오딜 역을 동시에 맡으면서 그 뒤로 1인 2역이 발레리나에게는 어떤 텍스트처럼 전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백조의 호수’ 1막에서 백조 연기는 오보에 솔로에 맞춰 나오는 첫 등장 자체가 살얼음 위를 걷듯 섬세한 연기를 요하는 긴장의 연속이라면, 2막의 흑조 연기는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열정을 향해 몸을 사리지 않는 듯 뜨겁지만 역설되게 그 뜨거움 속에는 백조의 속성을 감춘 가녀린 차가움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상반된 연기를 한 명의 발레리나가 연기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욕구 때문 아닐까.

‘블랙스완’에서 니나가 흑조에 대한 감정연기를 생각 안 하고, 테크닉에만 빠져 안무를 다 외웠다고 단장에게 말하듯 사람들은 흔히 백조 하면 무조건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흑조는 테크닉을 연상하지만 사실 그 안에 들어가면 그렇지가 않다. ‘백조의 호수’라 백조가 주인공이고 이 역할에 극의 흐름이 있지만 큰 조연인 흑조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여태까지 최고의 백조, 최고의 지젤, 최고의 어떤 역할 등을 봐 왔지만 아직까지 최고의 흑조를 보지는 못했다. 그만큼 흑조는 까다롭고 완벽을 찾기 힘든 캐릭터이다. 자칫 잘못하면 테크닉에만 치우칠 수 있는 아주 큰 함정이 있는 역할이다. 사실 흑조에 대해 어떤 해답이 있는 역할이라 말하기 힘들다. 누구는 굉장히 섹시하게, 누구는 도도하고 카리스마 있게, 또 어떤 누구는 굉장히 악마적으로 등등 정말 천의 얼굴을 가진 역할이랄까. 물론 백조로 둔갑한 역할이기에 아다지오 안에서 왕자를 속이기 위해 백조인 양 연기하는 부분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니 당시 무대 경험과 인생 경험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그것을 표현해 낸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최고의 흑조’ 연기할 날은 언젠가

그 이후 세월이 지나 수많은 ‘백조의 호수’ 공연을 하면서 내 자신도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흑조 안의 그 수많은 감정연기들이 하기 싫고 어려운 숙제가 아닌, 탐구하고 연구하는 즐길 수 있는 숙제가 되었다. 굉장히 절제된 동작 위주의 퓨어 클래식이라 감정연기의 한계가 있을 듯하지만 그 장면 하나하나에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듯 흐르는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함께라면 그 한계가 없는 듯하다. 그것이 오늘의 내 흑조보다 내일의 나의 흑조가 더욱더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는 니나의 마지막 대사처럼 “I felt perfect, I was perfect(난 완벽했어요. 난 완벽했어)”라고 말할 날이 올까?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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