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럼즈펠드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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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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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은 이라크와 테러리스트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고 “내가 안다는 걸 아는 것(known knowns)이 있고 내가 모른다는 걸 아는 것(known unknowns)이 있다. 또 내가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이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철학자의 말처럼 꼬여있지만 복잡한 사안을 명쾌하게 정리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가 그제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이란 회고록을 내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국인의 ‘역사적 기억상실증’을 꼬집었다. 2003년 방한 때 한 한국 여기자로부터 “왜 한국 젊은이들이 지구 반대편 이라크로 가서 죽고 다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50여 년 전 미국이 자기 나라의 젊은이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한국은 어떻게 됐을까”라고 되물었다고 했다. 그의 국방부 집무실 책상에는 한반도 야간 위성사진이 놓여 있었다. 남한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북한은 암흑천지인 사진이다.

▷그는 2002년 12월 당시 노 대통령 당선자가 한미 관계를 재검토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하자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미 국방부에 지시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이 국방비를 더 많이 분담하기를 원하던 그는 뒷날 노 대통령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기라는 요구를 받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미제(美帝)’의 고리를 끊는다고 한 일이 그쪽에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청하지는 못하나 바라는 바)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노 대통령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이제 고인이라 물어볼 수도 없다.

▷럼즈펠드는 중국이 포함된 6자회담은 실패할 것으로 보고 대북 압박을 통한 김정일 체제의 전복을 구상했다. 조지 W 부시 정권 말기로 접어들면서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국방부가 관여할 통로가 봉쇄되고 국무부 협상론자가 주도권을 잡은 것이 아쉽다고 회고했다. 럼즈펠드의 분류에 ‘모른다고 했지만 실제로 아는 것(unknown knowns)’을 보탤 수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크리스토퍼 힐 등 협상론자 역시 중국이 북한 편을 들어 6자회담이 실패할 걸 알았겠지만 애써 모른 척해버린 것인지 모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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