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유종]품위도 권위도 차버린 국회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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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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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날치기로 인해 박희태 의장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사퇴의 대상이 돼야 한다.”

5일 오후 국회 본관 3층의 박희태 국회의장 집무실. 민주당 박지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이용경 원내대표 등 야 3당 원내대표가 들이닥쳤다. 지난해 12월 8일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처리 당시 박 의장이 직권상정을 통해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고성에 삿대질까지 해가면서 10여 분간 박 의장을 몰아붙였다. 일단 발언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던 박 원내대표는 카메라 기자들이 자신의 발언 앞부분만 촬영한 뒤 이미 방을 나간 걸 발견하고 “왜 TV 카메라가 나가고 없나? 누가 나가게 했나? 비서실장, 이것도 결례다. 야당을 무시하는 것이다”라며 항의했다. 민주당 당직자들이 국회 카메라기자실로 가서 다른 카메라 기자들을 급히 불러왔다.

계속되는 야당 원내대표들의 질타에 박 의장은 시종 쩔쩔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박 원내대표가 이런 꼴사나운 걸 막기 위해 노력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못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태가 빚어진 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박 원내대표는 박 의장이 6일부터 알제리와 크로아티아를 공식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구제역으로 나라가 비상인데 여당 의원들만 데리고 외국을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퇴하고 나가든지 이런 일은 국민에게 비판받는다”고 질타했다.

마치 어른이 사고 친 어린아이를 꾸짖는 듯한 분위기로 20여 분간 이어지던 공개 면담은 소식을 들은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의장실에 들어서자 끝났다. 야당 원내대표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그동안 박 의장을 공식적으로 ‘바지의장’이라 불러왔고, 실제로 이날 그렇게 대우했다. 박 의장 역시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TV를 통해 방영된 면담 장면을 보면서 속 시원하다고 여긴 사람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이며 삼권분립의 상징인데 불만 토로나 비판은 비공개로 해야지, TV 카메라에 일부러 비치게 하면서 공개적으로 한 야당 원내대표들의 행동은 지나치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벌어진 볼썽사나운 이날 장면은 품위도 권위도 사라진, 아니 스스로 권위를 차버린 국회 지도부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유종 정치부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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