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공장 점거 파업이 8일로 24일째 이어지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측과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현대차 정규직 노조),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견해차로 교섭창구조차 열지 못한 상태다. 교섭창구가 마련돼도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비정규직 노조의 정규직화 요구에 대해 각 주체들이 드러내고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공장 내에 불법 파견이 없다고 주장하는 현대차가 현재 파업 중인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현대차 내 모든 사내 하도급이 불법 파견이어야 한다. 따라서 현대차가 스스로 ‘우리와 계약한 모든 사내 하도급업체가 사실은 불법 파견이었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소송을 통해 불법 파견(만약 있다면)이 입증된 사람만 해당된다. 하지만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애써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선별적 정규직화’라고 말하는 순간 전선(戰線)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현대차 사내 하도급업체를 운영했던 한 지인은 폐업 여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의사보다 현대차의 의사를 묻고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불법 파견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원청업체의 지휘감독 범위다. 겉보기에는 독립된 하도급업체지만 사실상 현대차가 사용자인 사내 하도급업체가 과연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까.
중재에 나선 현대차 지부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사측이 정규직 노조 동의 없이(설사 묵인이라 하더라도) 일정 분야 업무를 임의로 사내 하도급업체에 넘기기는 어렵다는 것. 이런 업무 중 상당수가 소위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업무다. 사내 하도급이 늘어난 데는 경영상 효율과 더불어 정규직이 하기 싫거나 힘든 일을 외주로 돌린 탓도 크다. 설령 현재 비정규직이 전부 정규직이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정규직이 된 입장에서 굳이 3D 업무를 할 정규직이 몇이나 될까. 결국 또 다른 외주업체를 찾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이번 사태는 끝날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둘러싼 각 주체들이 진실을 솔직히 꺼내놓고 근본적인 해법을 논의하지 않는 한 또 다른 비정규직 파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과 관련된 각 주체들이 자신의 이득과 관계없이 이번 사태를 국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로 승화하려는 용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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