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전두환의 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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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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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오 경찰청장의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충돌은 가라앉았지만 인터넷에서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꽤 지명도가 있는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는 최근 블로그에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비자금 일부를 미국으로 반출했다”며 구체적 정황을 제시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100억 원 상당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 보유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약식 기소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에 대해 법원이 벌금 300만 원을 확정했다. 그럼에도 인터넷에는 그럴싸하게 덧붙여진 루머들이 여기저기 떠있다.

▷서울중앙지검은 8월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이 내 이름으로 외국계 은행 20여 곳에 분산예치돼 있다”며 사업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25억 원을 가로챈 이모 씨를 사기죄로 구속기소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 원씩의 비자금을 실제 은닉했던 사건 이후 ‘전직 대통령 비자금’은 루머의 단골 소재다.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 의혹은 진위를 명확히 가려야 하겠지만 근거 없이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도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직 내지 않은 추징금 1672억 원의 5만6000분의 1에 해당하는 300만 원을 11일 검찰에 납부했다. 2008년 3월 은행계좌에 남아있던 4만7000원을 검찰에 추징당한 이후 3년이 되는 내년 3월이면 추징 시효(時效)가 만료되지만 이번에 300만 원을 내 시효가 다시 3년 연장됐다. 검찰은 추징금 납부 시효가 만료되기 전 강제집행을 통해 재산을 압류한다. 전직 대통령의 자택 집기에 ‘빨간 딱지’를 붙여가며 이 잡듯 재산을 뒤지는 험한 꼴을 막기 위해 검찰과 전 씨 측이 타협한 흔적이 엿보인다.

▷전 씨는 2003년 “예금과 채권을 합쳐 29만1000원이 전 재산”이라며 법원에 재산목록까지 제출하고 ‘찾을 수 있으면 찾아봐라’는 식으로 버텼다. 검찰은 “연희동 자택은 경매를 통해 타인 명의로 넘어갔고, 본인 명의 재산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행차 때마다 대거 측근들을 대동하는 전 씨의 씀씀이로 보아 은닉한 비자금이 상당할 것이라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재벌들로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받아 챙긴 전 씨가 29만 원, 300만 원을 조몰락거리는 모습은 쩨쩨해 보인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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