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재문]“89년 무작정 蘇방문… ‘YS 초청해달라’ 제의”

동아일보 입력 2010-09-30 03:00수정 2010-10-0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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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한-러 수교 20주년… 산파역 정재문 前의원
“한-소련(현 러시아) 수교는 냉전시대에 한반도의 정세안정을 가져왔습니다. 개혁(페레스트로이카), 개방(글라스노스트)을 지향하던 소련도 양국 수교를 통해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양국 정부의 수교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단신으로 러시아를 찾아 한-러 수교의 산파역을 했던 정재문 전 의원(사진)은 한-러 수교의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하루 앞둔 29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정 전 의원 사무실에서 당시 긴박했던 한-러 접촉의 뒷얘기를 들었다.

―한-러 수교 과정은 어떠했는지….

“1990년 9월 30일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최호중 외무부 장관과 소련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부 장관이 한소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하지만 수교는 그보다 1년 전에 있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소련 당국 간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그 시작은 내가 1989년 3월 단신으로 모스크바를 찾아 과학아카데미 산하의 국제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관계자들을 만나 공동성명을 만들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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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접촉은 어떻게 진행됐나.

“당시 나는 국회 외무위원장 직책을 갖고 있으면서 소련을 한번 방문해 관계개선을 해야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과거 서독과 러시아의 수교에 IMEMO가 중간 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알게 돼 IMEMO를 통해 소련과 접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1989년 3월 국제의원연맹(IPU) 총회 참석차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방문했다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소련 대사관은 당시 72시간 체류가 가능한 ‘통과 비자(Transit Visa)’를 발급해주었다.”

―아무런 신변보호 장치도 없었을 텐데….

“당시 정부 허가도 없이 개인적인 신념으로 다녀왔다. 국가보안법 위반인 셈이다. 1896년 고종이 조선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에 파견했던 민영환 특명전권공사를 떠올리면서 사명감을 가졌다.”

―IMEMO와 첫 접촉에서 공동 성명서를 만든 과정은 어떠했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당시 IMEMO 원장 등을 만났더니 ‘왜 왔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이웃나라끼리 잘 지내자’고 얘기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그리고는 김영삼(YS)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소련 방문을 위해 초청장을 달라고 했고 만나서 논의한 내용을 공동성명으로 작성했다. 서울에 돌아와서 YS에게 모스크바를 다녀왔다고 얘기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로 분위기가 좋아지긴 했지만 결국 옛 소련이 한국의 야당을 대화 파트너로 택한 셈인데….

“당시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던 러시아는 한국 정부나 여당보다는 야당과의 접촉을 좀 더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YS가 IMEMO를 방문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만나면서 한소 수교의 다리가 놓였다. YS가 다음 해에 방문했을 때에는 3당 합동 후 민자당 대표 신분이어서 러시아 측에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기도 했었다.”

―천안함 사건 처리과정에서 러시아가 한국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천안함 사건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은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려고 한 것 같다. 러시아는 천안함 사건에서 한국의 손을 들어주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향후 양국의 민간 및 인적 교류를 넓혀 서로 이해관계를 더 넓혀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것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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