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총리 후보와 같은 道서 기업한 게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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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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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조선사들과 어떤 유착, 비리 의혹을 얘기하셨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계십니까?”

“많은 국민이 제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청문회를 대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박기춘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답한 내용이다. 박 부대표는 이 방송에서 “모 기업이 군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납품가격을 조작해 부당이익을 올린 과정에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으며 이 기업의 실명도 밝혔다.

사회자는 이 방송에서 박 부대표에게 의혹 제기의 근거를 무려 5차례나 물었다. ‘제보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뭐냐’고 질문하자 박 부대표는 “지금 말하는 건 적절치 않고 청문회에서 밝히겠다”고 비켜 갔다. 내용이 구체적이냐고 묻자 박 부대표는 “그렇게까지 말하기 어렵다”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구체적이지 않다는 거냐,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냐’고 따지자 이번에 돌아온 답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내용이 많이 들어와 있느냐’고 돌려 물으니 박 부대표는 “이런저런 제보가 들어오고 있어 여러 가지 검토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박 부대표는 끝까지 근거 없이 “김 후보자가 모 기업의 군납 비리에 연루된 의혹이 있다”는 주장만 한 셈이고, 일부 인터넷언론들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이 기업의 ‘특혜 의혹’을 기사화했다.

해당 기업은 “우리가 군용 통신장비 납품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김 후보자와는 아무 관련도 없고 단순 법규 위반인데 이렇게 ‘비리 기업’인 것처럼 몰아가도 되느냐”며 속을 태웠다. 자신들의 주 사업장은 경남이지만 수사를 받은 사업장은 경기도에 있고, 관행적으로 해오던 노무비 원가 산정의 잘못을 지적 받은 사안으로 올해 5월 벌금형을 받고 종결됐다는 설명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박 부대표의 의혹 제기는 ‘김 후보자가 경남지사를 지냈는데 경남에 있는 회사가 수사를 받았으니 김 후보자도 여기에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수준의 황당한 짜깁기가 된다.

기자는 박 부대표가 어떤 제보를 받았는지 알지 못하며, 총리 후보자에 대한 합리적인 의혹이 있다면 물증이 없더라도 정치인으로서 공론화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아무 얘기나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님은 박 부대표도 잘 알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박 부대표가 자신의 ‘의혹 제기’에 대해 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할지 궁금하다.

장강명 산업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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