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홍사종]자녀에게 어떤 ‘유적’을 남겨주시겠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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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모 대기업의 회장 4형제는 충남 서산의 작은 마을에서 빈한하고 남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단란했던 가정을 팽개친 채 딴 집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어렵던 시절에 홀로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다. 한때 그 지역의 대단한 문벌을 자랑했던 가문의 많던 전답은 아버지의 파락호 생활로 다 사라져 버렸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활은 피폐해졌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치던 교회종

어머니는 당신에게 있어 ‘한 세상’인 4형제를 구원하기 위해 어느 날 큰 결심을 하고 서울로 남의집살이를 떠났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한 살배기 막내까지 외가에 맡기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채 낯선 서울로 떠났던 어머니의 처절한 심정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이 장한 어머니는 몇 년 식모살이로 돈을 모아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에 와서도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먼 새벽길을 걸어 읍내 교회당의 종을 쳤다. 교회에서 조금씩 주는 양식도 도움이 됐지만 남자도 버거운 종지기를 어머니가 자원한 이유는 어린 4형제의 건강과 일탈 없이 잘 양육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새벽 종소리는 세상을 깨웠지만 고단한 어린 4형제의 영혼도 흔들어 깨웠다. 어머니가 치는 종소리를 듣고 4형제는 어떠한 절망과 곤궁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아본 적이 없다.

형제는 다 자수성가해서 각자 기업을 일궜다. 돈 때문에 제대로 학업을 못 마친 큰형은 동생을 명문대에 보내며 굴지의 기업을 일궈냈다. 엄마 젖도 못 먹고 자란 막내는 환경 분야에서 은탑산업훈장까지 받은 독보적인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대표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 막내아들인 S 씨가 내게 어머니의 유적을 복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향에 가서 사라져버린 어머니의 교회종을 찾아 그 자리에 종탑을 복원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어머니의 그 새벽 종소리가 아니었다면 우리 형제들의 오늘도 없었을 거예요.” 경기 화성시 바닷가의 외진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앞 선생님 집에서 과외공부를 했다. 밤늦도록 과외를 받고 돌아오던 길, 나는 장정도 무서워 혼자는 넘지 못한다는 느릿재 고개 앞에서 등골이 오싹하는 공포감에 매일 떨었다. 그때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저편에는 언제나 희미한 등불 하나를 밝히며 다가오던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아!” “엄마!” 이따금 들려오는 음산한 부엉이 소리에 나뭇가지조차 숨죽이는 밤, 밤이슬에 바지고쟁이를 다 적시며 혈혈단신 그 무서운 느릿재를 넘어온 용감한 어머니를 통해 나는 버려진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이따금 매몰찬 바람에 등불이 꺼지면 등피 속으로 성냥불을 연방 집어넣던 어머니는 두려움을 씻어주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고향의 옛집 대문 앞에 와서야 끝나곤 했는데 독서를 많이 하신 어머니의 주제는 역사 속의 위인이었다.

느릿재 넘으며 듣던 옛날 얘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이야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박종화의 한국사에서 발췌한 내용이었는데 여기에다 자신의 상상력까지 그럴싸하게 보태시던 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긴 이야기의 나래는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다.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고, 남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느릿재 고개를 통해 나는 다른 세상으로 나와 여기까지 왔다.

“고향의 느릿재는 우리 모자의 사연이 밀교(密敎)처럼 얽힌 유적지이지요.” S 씨와 나는 서로의 가슴속에 사라지지 않는 ‘어머니의 유적’이라는 제목의 책을 함께 써서 자녀에게 남기자고 뜻을 모았다.

물리적인 장소이건 기억 속의 장소이건 누구나 어린 시절에 부모와 얽힌 유적을 간직하고 산다. 시골집이나 도시의 아파트에서 자란 사람도 저마다 부모님과의 사연이 얽힌 유적(장소)을 간직한다. 정화수를 떠놓고 집나간 자식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던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어머니의 현대식 장독대를 유적으로 꼽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엔 대자연의 품속에서 부모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의 여행지를 잊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내가 아는 어떤 이의 유적은 강원도 어느 산속 아버지와 단둘이 오붓하게 다녀왔던 캠핑 장소라고 한다. 인생의 어렵고 힘든 순간마다 아버지가 방황했던 사춘기의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던 그 장소의 기억 앞에서 아들의 생명은 활화산처럼 용솟음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얽힌 뭉클한 사연이 송송이 맺혀 숨 쉬는 유적지를 간직하고 산다는 이 작고 사소한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더없이 충만하고 행복해진다. 하긴 이 ‘작고 사소한 사실’보다 가슴 저리고 아름다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이 여름,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당신은 자녀에게 과연 어떤 유적을 남겨줄 것인가.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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