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동엽]오케스트라형 조직 vs 재즈형 조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9일 03시 00분


라벨, 쇼스타코비치, 사티, 글래스 등 현대 클래식 음악의 거장 중에는 재즈에 매료된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놀라워했던 점은 재즈의 즉흥연주였다. 클래식 오케스트라는 미리 정해진 악보를 따라 연주하고 지휘자가 전체 단원을 일사불란하게 리드하며 악기별로 맡은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무대 배치도 악기별로 나눠 앉아 전체 단원이 지휘자만 올려다보는 반면 지휘자는 높은 지휘대에서 전체 단원을 내려다보며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다.

재즈 연주에는 지휘자와 미리 정해진 악보가 없다. 모든 연주자가 알아서 자기가 생각하는 음악을 연주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연주자와의 조화를 찾아나간다. 연주자 중 누군가 예상 못한 멜로디나 템포를 연주하면 다른 연주자는 즉시 자율적으로 반응해 연주를 맞춰 나간다. 이 과정에서 누구의 지휘나 명령도 없다. 각자 알아서 떠오르는 악상에 따라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에게 긴밀하게 반응하며 전체로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게 재즈 즉흥연주의 묘미이다.

두 가지 음악 형식을 기업이나 정부 공공조직에서 일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데 적용한다면 어느 편이 더 우월할까? 경영조직이론에선 21세기에는 재즈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21세기 환경의 특징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극도의 불확실성과 빛의 속도로 변하는 급변성이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이 빈번히 발생할 뿐 아니라 눈 깜짝할 사이에 진행돼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참사로 발전하는 일이 다반사다. 최근 GM 씨티 코닥 소니 도요타 등 세계 1위 기업이 불과 1, 2년 만에 몰락하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처럼 완벽해 보이던 제도가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일은 바로 불확실성과 급변성 때문이다.

한 리더십 요구한 20세기 가고

21세기 위기상황에서는 재즈와 같이 예상 못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찰나를 놓치지 않고 적시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순발력이 필수적이다. 즉 대량생산 중심의 20세기가 모든 사람이 기계부품처럼 미리 정해진 일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계획대로 수행하고 이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강력한 리더가 필요한 오케스트라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재즈의 시대이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없으면 저마다 우왕좌왕하며 소음만 만드는 반면, 재즈는 모든 연주자가 지휘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로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21세기의 핵심 경쟁우위로 꼽히는 창조적 혁신은 수직적이고 부분 간 경계가 뚜렷하며 정해진 계획대로 움직이는 오케스트라형 조직에서는 불가능하며,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예상 못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재즈형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천안함 참사와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귀환을 보면 우리 조직은 오케스트라형인 것 같다. 천안함 참사와 같은 예상 못한 위기에는 해군뿐 아니라 육해공 모두와 관련 민간기관, 여러 정부부처가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사건 발생 즉시 단숨에 각자 알아서 최적의 대응을 하면서 동시에 유기적으로 반응하며 전체로서 최고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재즈형 즉흥 순발력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에서 관련 기관의 대응을 보면 불협화음을 내거나 상부의 지침을 기다리다 실기하거나 논란을 가중시킨 감이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높은 단기 성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 회장의 상황 인식은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또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회장의 리더십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 회장 같은 강력한 리더 없이도 경영진 각자가 자신이 맡은 사업에서 급박한 환경변화에 적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20세기 오케스트라형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된다.

순발력 갖춘 셀프 리더십의 시대


재즈형 조직에서는 자신의 연주가 다른 연주자와 충돌할까 머뭇거리면 즉흥연주가 무너지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속하고 과감한 행동이 권장돼야 한다. 또 각자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지만 동시에 전체로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므로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긴밀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구성원에게 사전 계획이나 지시가 없어도 각자 적시에 최적의 대응을 할 수 있는 권한과 역량을 부여하는 임파워먼트이다.

오케스트라형 조직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통제를 더 강화해서 누구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극도로 불확실하고 급변하며 복잡한 위기상황에서는 이런 통제 강화가 오히려 더 걷잡을 수 없는 대참사를 초래한다. 재즈형 조직은 반대로 각자 자율적으로 적시에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통제를 풀어주고 임파워먼트 한다. 즉 21세기 재즈형 조직은 지휘자와 같은 리더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원이 리더인 셀프 리더십의 영역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