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지연]방송서 가십거리 모자라 메달리스트 불렀나

  • Array
  • 입력 2010년 3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7일 오후 6시. 평소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TV를 켠 시청자들은 채널마다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에 당황했다. 이날 지상파 3사는 ‘밴쿠버 겨울올림픽 한국선수단 환영 국민대축제’를 두 시간 동안 동시에 생중계했다.

당초 방송사들은 겨울올림픽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개별적으로 축하공연을 준비해왔다. 선수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축하 가수 섭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동시 중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가 간의 주요 스포츠 경기나 역사적인 행사가 아닌 단순 축하 공연을 지상파 3사가 동시 중계한 것은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무시한 행태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사들은 ‘전파 낭비’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하공연 동시 생중계에 나섰다. 이날 KBS 시청자게시판 등에는 “왜 방송 3사에서 동시에 올림픽 특별 생방송을 하느냐. 전파 낭비다”라는 항의 글이 올라왔다. 실제 국민대축제 시청률은 KBS 1TV 6.6%, SBS 4.3%, MBC 3.9%로 3사를 합쳐도 14.8%에 불과했다.

겨울올림픽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은 이뿐이 아니다. 올림픽 폐막 후 인기 선수들을 섭외하려는 방송사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번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자신의 개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젊은 선수들인 만큼 방송에서 이들의 색다른 매력을 이끌어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실제 방송은 실망스러웠다. 선수들에게 경기 내용이나 소감 위주로 묻기보다는 연예인 이상형을 묻고 선수 간의 열애설을 부각시키는 등 예능 프로그램 특유의 식상한 ‘가십 토크’가 주를 이뤘다.

5일 SBS ‘절친노트’에는 모태범 이승훈 이상화 선수와 이들이 이상형으로 꼽은 소녀시대의 유리 윤아, 비스트의 윤두준이 출연했다. 진행자들은 이상화 모태범 선수의 열애설을 캐묻고, 이상화 선수에게 “두준 씨 실제로 보니까 어때요. 언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물었다. 6일 KBS 2TV ‘연예가중계’에서 제작진은 모태범 선수에게 “첫 키스 언제 해보셨어요” “소녀시대와 악수한 소감은 어떤가요”라고 물었다.

방송사들이 올림픽 스타를 TV 프로그램에 초대해 경기장 밖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개성 강한 젊은 선수들은 이를 즐기며 시청자들도 흥미로워한다. 하지만 과잉 섭외 경쟁에 방송사들이 같은 프로그램을 같은 시간에 내보내거나, 올림픽 스타를 초대해놓고 신변잡기적인 가십 토크로 일관하는 것은 시청자도, 선수들도 원치 않는 일일 것이다.

이지연 문화부 chanc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